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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경 속의 인물: 실로암 못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14 조회수3,576 추천수1
[성경 속의 인물] 실로암 못


실로암 못은 예루살렘 시내 서쪽에 있다. 크기는 야외 풀장 정도. 예루살렘이 포위될 경우 사람들이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물이었다. 이곳은 또한 예수님께서 태생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장소다(요한 9,7). 이 일로 초대교회 신자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5세기에 못 위에 성당이 세워졌지만 614년 페르시아 침공으로 파괴된 후 지금까지 재건되지 않고 있다.

실로암 못을 확장한 사람은 기원전 7세기 유다의 임금이었던 히즈키야다. 그는 예루살렘 성 밖의 키드론 골짜기에서 물을 끌어왔다. 그곳에는 여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었다. ‘기혼샘’이다. 현재도 하루 2,000톤의 지하수가 솟는다고 한다. 이 물을 성벽 아래 지하 암반을 뚫고 끌어들인 것이다. 그래서 이 수로를 ‘히즈키야 터널’이라 부른다(2역대 32,30).

1880년 여름이었다. 실로암 못에서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물이 흘러나오는 지하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6m쯤 갔을 때 마침 터널 입구에서 빛이 들어왔다. 순간 아이는 벽에 쓰인 글씨를 발견하게 된다. 이후 아이들을 통해 ‘벽에 박힌 글자 이야기’가 퍼져나갔고 이렇게 해서 기원전 701년에 기록된 고대 히브리어 비문이 발견되었다.

모두 여섯 줄로 2백자가 새겨진 비문이었다. 히즈키야 터널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새겨져 있었다. 다음은 완공에 관한 기록이다. ‘3큐빗(1,3m)쯤 남았을 때 반대편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터널이 뚫렸을 때 서로를 얼싸안고 도끼를 부딪쳤다. 물은 기온샘에서 1천 2백 큐빗(5백 25m)을 흘러왔다.’

비문 발견 후 10년 뒤(1890년) 도난사건이 발생한다. 도굴꾼이 실로암 못에 들어가 터널 벽의 비문을 떼어내 골동품 가게에 팔아버린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은 즉시 비문을 압수해 이스탄불로 가져갔고 지금까지 그곳 박물관에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터키는 들은 척도 않고 있다.

다윗은 일찍부터 실로암의 수원인 기혼샘을 신성시했다. 예루살렘을 지켜줄 물줄기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솔로몬을 왕으로 도유할 때도 기혼샘에 가서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1열왕 33-34) 소홀히 말라는 암시였을 것이다.

[2012년 1월 15일 연중 제2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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