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몰록
몰록(Moloch)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어린이를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던 신을 말한다. 모세 율법에는 몰록제사를 분명히 금하고 있다. ‘너희는 너희 자식을 몰록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서는 안 된다(레위 18,21). 히브리인들이 실제로 자녀들을 몰록에게 제물로 바쳤을까? 그런 행동이 있었기에 레위기의 기록이 등장했을 것이다.
유다의 12번째 왕 아하즈는 ‘몰록의식’을 치렀다. 자신의 어린 아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했던 것이다(2열왕 16,3). 실로암을 만든 히즈키야의 아들 므나쎄 역시 왕자를 불 속에 들여보냈다(2열왕 21,6). 불 위를 걷게 한 것은 몰록에게 아이를 바치는 것의 축소판이었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히브리인들 사이에 몰록의식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예언자들의 질책도 높았을 것이다.
그럼 왜 왕들까지 몰록의 힘을 빌리려 했을까?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였다. 로마 역사가 디오도로스(Diodoros)는 카르타고가 로마와 싸울 때 카르타고 어린이 300명을 몰록에게 바쳤다는 기록을 남겼다.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는 로마와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다. 한니발 장군이 등장하는 ‘포에니 전쟁’이다. 승리를 위해 카르타고는 어린이들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유다의 아하즈와 므나쎄 역시 아시리아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아가 남쪽을 칠 것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자들을 불 속에 들여보내 몰록의식을 거행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몰록은 염소 머리를 한 인간으로 그려져 있다. 가나안의 원주민들은 마력을 지닌 왕으로 숭배했으며 잡귀를 몰아내는 토속 신으로 받들고 있었던 것이다.
몰록의식은 므나쎄의 아들 아몬 왕 때 가장 번성했다. 예루살렘 바깥 골짜기에서는 공공연하게 거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몬이 살해되고 그의 아들 요시야가 등장하자 몰록숭배는 왕명으로 금지된다. “임금은 벤 힌놈 골짜기에 있는 토펫을 부정한 곳으로 만들어 아무도 제 아들딸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여 몰록에게 바치지 못하도록 하였다.”(2열왕 23,10)
몰록은 가나안에 살던 대부분의 민족이 섬겼다. 그만큼 무수한 어린이들이 희생된 것이다. 신약성경은 지옥을 게헨나(Gehenna)로 표현했다. 힌놈 골짜기란 뜻이다. 이곳에서 몰록의식이 거행되었고 살아 있는 아이들이 불 속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2012년 1월 22일 연중 제3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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