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므기또
므기또는 기원전 7세기 유다를 개혁해 이스라엘의 부흥을 꾀하던 요시야 임금이 전사한 비운의 장소다. 한편 종말이 되면 하늘의 군대와 사탄의 세력이 맞붙을 최후의 격전지로도 알려져 있다. 묵시록 16장 16절에 나오는 ‘하르마게돈’은 직역하면 ‘므기또의 언덕’이다. 희랍어 ‘하르’는 언덕이며 마게돈은 므기또의 소유격이다. 므기또에서 내륙으로는 이즈르엘 평야가 펼쳐져 있다. 현재는 비옥한 땅이지만 원래는 늪지대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므기또는 이 평원을 지키는 유일한 도시였고 교통의 요지였다. 이집트에서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로 가려면 므기또를 지나야 했고 북쪽의 해안 도시에서 예루살렘으로 갈 때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이었다. 그러다보니 여러 민족이 이곳을 노렸고 역사적으로 전투가 가장 많았던 도시가 되었다.
가나안을 정복한 여호수아는 이 땅을 므나쎄 지파에게 주었다(여호 17,11). 하지만 히브리인들은 장악하지 못했고 주민들의 세력은 그대로였다. 그들 없이는 도시가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훗날 솔로몬은 므기또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요새화했으며(1열왕 9,15), 군사력의 상징인 말과 기병을 집중 육성했다. 이후 이곳은 북부지역 최대 도시가 되었고 왕국의 방어벽 구실을 하였다.
므기또는 유다 6번째 왕 아하즈야가 예후 장군에게 살해된 곳이기도 하다. 당시 예후는 쿠데타를 일으켜 이스라엘의 요람 임금을 살해했고 함께 있던 아하즈야까지 활로 쏴 죽였던 것이다(2열왕 9,14-28). 이후부터 남북 관계는 극도로 악화된다. BC609년에는 요시야가 이집트 왕 ‘느코’와 싸우다 이곳에서 전사했고 이후 유다는 내리막을 걷다가 망하게 된다.
므기또에서 일어난 전투는 최근의 발굴로 많이 밝혀졌다. 도시를 장악했던 민족은 다양했다. 이집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희랍 로마 등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이 오스만 제국을 중동에서 몰아내는 결정적 전투를 므기또에서 벌였고 오랫동안 주둔해 있었다.
발굴결과 이곳에는 기원전 8세기부터 외부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 장치가 있었다. 지하에 큰 통로(우물)를 만들어 물을 저장했던 것이다. 물은 성벽을 바치고 있는 바위에 가로로 구멍을 뚫어 도시 밖의 샘에서 끌어왔다. 성이 포위되었을 때를 대비한 준비였다. 3000년이 지난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2012년 3월 11일 사순 제3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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