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동방박사 (1)
동방박사 이야기는 마태오복음에만 있다. 그들은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의 귀인들이다. 별이 특정장소로 사람을 이끈다는 것은 고대인들에게는 상식적인 일이었다. 별은 베들레헴과 연결된다. 당시 이곳은 예루살렘 남쪽 8km 지점에 있던 작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예언서에 기록된 메시아의 탄생지였다(미카 5,2).
그러나 핵심은 이곳에서 다윗이 태어났다는 사실에 있다(1사무 16,1). 마태오복음은 유다인을 염두에 두고 기록되었다. 그들에게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리려는 것이 복음작가의 의도였다. 그래서 1장 서두부터 족보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께서 다윗왕가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2장 서두는 동방박사 이야기다. 예수님께서 다윗왕의 탄생지와 같은 곳에서 태어나셨음을 알리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복음작가는 박사들의 입을 빌려 자신이 복음서를 기록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동방은 희랍어 아나톨론(anatolon)의 번역이다. 현재 터키의 아시아 지역을 이루고 있는 반도를 아나톨리아라 한다. 여기서 유래된 단어다. 희랍인들은 자신들의 땅 동쪽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유다인들도 예루살렘 동부 지역을 그렇게 불렀다. 특히 바빌론 지역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바빌론은 유다인들이 포로생활을 했던 지역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두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상당수는 남아 있었고, 나름대로 조직을 이루고 있었다. 최초의 해외 유다인 공동체(디아스포라)였다.
박사는 희랍어 마코이(makoi)의 번역이다. 구약의 다니엘서에 의하면 마코이가 하는 일은 꿈을 해몽하거나 별을 보고 나라의 길흉을 점치는 사람들이었다. 다니엘 예언자도 마코이 출신이었다(다니 5,11). 동방박사는 바빌론의 유다인 공동체와 연관된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예물을 바쳤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다. 황금은 왕이 사용하는 금속이었고 유향은 향기 나는 풀에서 추출한 방향제였다. 이것은 성전 제사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었다. 몰약 역시 고급 방부제로 귀인이 아니면 쉽게 구할 수 없었다. 모두 특별한 상징이 있다. 메시아와의 연관성이다. [2012년 8월 5일 연중 제18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성경 속의 인물] 동방박사 (2)
동방박사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한 최초의 이방인이다. 마태오복음에는 그냥 박사들로 나온다. 세 명이라 주장한 이는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오리게네스(185-254)였다. 그들이 예물 셋을 바쳤기에 세 명이라 했던 것이다. 훗날 교회가 받아들였다.
한편 이들을 왕이라 한 사람은 테르툴리아누스(155-230) 교부였다. 초기에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6세기부터 시편 72장을 근거로 받아들였다. 이런 이유로 동양에서는 공현축일을 삼왕내조(三王來朝)라 했다. 내조는 외국사신이 찾아와 문안한다는 뜻이다. 삼왕의 이름은 가스파르(Gaspar), 멜키오르(Melchior), 발타사르(Balthasar)로 알려졌다. 이들의 이름은 외경인 ‘예수 유년기복음’에 등장한다.
멜키오르는 황금을 가지고 온 노인이었다. 가스파르는 유향을 바쳤으며 수려한 용모의 청년이었다. 몰약을 바친 발타사르는 터번을 두른 중년이었다. 황금은 왕권을 상징하고 유향은 사제를 위한 예물이다. 몰약은 죽음과 구원을 암시한다. 예물이 구유의 아기에게 바쳐졌다는 것은 메시아로 선언한다는 행동이었다.
중세에는 성인들의 유해를 모신 화려한 성당을 짓는 것이 모든 도시의 염원이었다. 피렌체는 세례자 요한의 유해를 모신 성당을 지었고 베네치아는 이집트에 있던 마르코의 유해를 가져와 마르코 대성당을 지었다. 밀라노 역시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삼왕의 유해를 모셔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1세에게 빼앗기고 만다. 황제는 삼왕의 유해를 모실 성당을 짓기 시작했는데 오늘날의 쾰른 대성당이다. 현재도 매일 2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아든다는 유럽 최고의 순례성당이다.
메시아의 출현은 이스라엘의 염원이었다. 바빌론 포로 이후에는 흩어진 유다인들을 묶는 공동이념이 되었다. 그들은 메시아를 ‘유다인의 왕’이라 부르며 기다렸다. 예수님의 죄목이 된 유다인의 왕(INRI)이라는 명패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헤롯 임금은 동방박사들이 돌아간 뒤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살해했다. 유다인 왕의 출현을 막는다는 구실이었다. 헤롯은 기원전 4년 70세로 죽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삼왕의 방문을 별도로 기념하지 않고 1월 6일에 성탄과 함께 지내고 있다. [2012년 8월 26일 연중 제21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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