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에페소
오늘날의 에페소는 터키의 항구 도시 이즈미르(Izmir)에 속한다. 이즈미르는 묵시록에 등장하는 스미르나의 현대식 이름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지중해 동쪽 해안에 세운 도시국가였다. 에페소는 이즈미르 남쪽 외곽지대에 있으며, 현재는 관광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터키는 한동안 소아시아라 불리었다. 기원전 18세기부터 히타이트 제국이 지배했는데 에페소를 ‘아파사스’라 불렀다. 대지의 여신이란 의미다. 에페소는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다. 기원전 4세기에는 페르시아 식민지가 되었고 알렉산더 이후에는 그리스의 통치를 받았다.
로마 시대에는 아시아의 정치 문화 중심지가 되었고 동서양을 잇는 항구도시로 각광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하자 에페소를 선교 중심도시로 삼았다. 바오로 사도 역시 전교여행 때 수차례 에페소를 방문했고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한편 사도 요한은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에페소에서 살았다. 64년 바오로가 순교하자 그를 대신해 교회 지도자가 되었다. 요한은 에페소에서 선종했고 그곳에 묻혔다. 이후 에페소는 성지로 인식되었다. 6세기 중엽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요한의 무덤 자리에 웅장한 교회를 세웠다.
에페소는 431년 6월, 제3차 공의회가 열렸던 곳이다. 당시 교회는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네스토리우스와 신성을 강조하는 치릴루스 사이에 논쟁이 뜨거웠다. 네스토리우스는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로 부를 수 없다는 논리를 폈고 치릴루스는 부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네스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였고, 치릴루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였다. 양쪽 지지 세력으로 인해 교회가 분열될 위기였다. 이렇게 되자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주교들을 소집했다. 장소는 성모님께서 사셨던 에페소였다.
네스토리우스는 파문당했고 황제에 의해 아라비아로 추방되어 수도원에서 죽었다. 하지만 그를 따르던 추종자들은 중동지역에서 선교했고 7세기에는 중국까지 건너가 활동했다. 당나라 황제는 이들을 환대했고 경교(景敎)라 부르게 했다. 당나라는 신라와 관계가 깊었기에 경교는 신라에도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1956년 경주 불국사에서 출토된 돌 십자가와 해남의 대흥사가 소장하고 있는 구리 십자가는 경교의 흔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2012년 11월 11일 연중 제32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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