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자리] 역사서 해설과 묵상 18 : 고대의 축제
축제는 삶의 기쁨과 종교적 기쁨을 표현하려고 주기적으로 거행된다. 매주, 매월 또는 매년 축제가 거행될 수 있다. 공동체적 삶을 위해 그리고 사회적, 종교적 전통의 연속성을 위해 축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축제는 어떤 특수한 사건에 대한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을 강화시키며 후대에 그 기억을 전달한다. 그러한 축제는 그 공동체에 의해 정형화된 규범과 예식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고대사회에서 모든 축제는 물론 자연과 연관되어 형성되었지만 종교적 특성이 있다. 그런 축제들은 두 가지를 표현한다. 하나는 인생과 자연의 축복에서 오는 기쁨을 드러내며 일상의 힘든 일에서 잠시나마 도피하려는 자연적인 열망을 표현하고, 또 하나는 인생과 자연이라는 선물을 준 신적인 존재로 향하고 신적인 세계와 결합하려는 노력을 표현한다.
축제는 초월하고픈 인간의 본성적 욕구, ‘영원을 향한 향수’(M. Eliade)에서 유래한다. 그리하여 축제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의식과 상징과 신화가 생겨났고 그를 통해 사람들은 ‘영원한 현존’이라고 여겨졌던 신화적 세계 안에 동참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세상창조에 관한 이야기들 또는 신들과 영웅들에 관한 서사시들은 축제의 의식 안에서 재현되었으며 그런 의식을 통해 축제는 사회 구성원들을 일치시킬 뿐만 아니라 종교적 전통을 물려주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어느 문화권에서든지 축제는 ‘종교의 외적인 표현’이다.
축제의 종교적 성격은 봉헌에서 잘 드러난다. 고대인들은 축제를 신들이 인간에게 내리는 선물이며 동시에 인간이 신들에게 드리는 봉헌이라고 생각하였다. 제사로 바치는 희생동물이 자연에서 가려낸 봉헌물인 것처럼 축제는 시간에서 가려낸 거룩한 봉헌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생업에 필요한 시간을 떼어내는 것은 축제를 거행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축제가 영속적으로 이어지려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중요하다. 일정한 주기 안에 위치한 축제는 ‘전체 시간 안의 소우주’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세속적인 시간을 제거하고 새로운 시간을 설정하려는 노력이 주기적인 축제 안에 표현되었다. 말하자면 축제를 거행함으로써 ‘시간의 전적인 재생’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이성적 동물(homo sapiens)일뿐만 아니라 놀이를 즐기는 동물(homo ludens)이라고 한다면, 모든 축제는 드라마요 거룩한 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축제는 드라마와 놀이로 끝나지 않고 백성을 모으며 끊임없이 공동체를 형성한다. 신들의 영광을 위해 제정된 축제가 그 사회의 연대성을 보장하는 핵심적 요인이 되는 것이다.
탈출기 23장은 3대 순례축제를 이렇게 규정한다. “너희는 일 년에 세 차례 나를 위하여 축제를 지내야 한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대로, 아빕달 정해진 때에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그달에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아무도 빈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 너희는 밭에 씨를 뿌려 얻은 너희 노동의 맏물을 바치는 수확절을 지키고, 밭에서 너희 노동의 결심을 거두어들이는 연말에는 추수절을 지켜야 한다. 남자들은 모두 일 년에 세 번 주 하느님 앞에 나와야 한다”(탈출 23,14-17). 이처럼 3대 축제(무교절, 수확절, 추수절)는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동시에 백성을 모으고 공동체를 형성하여 연대성을 보장하는 사회적 역할을 했다.
묵상주제
“아무도 빈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탈출 23,15).
[2012년 11월 4일 연중 제31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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