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토마스
토마스 역시 갈릴래아 호반의 어부였다가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공관복음에는 그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 기록은 없다. 하지만 요한복음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4번 등장한다. 첫째는 그를 쌍둥이로 부른 것이다(요한 20,24). 하지만 누구와 쌍둥이인지 왜 쌍둥이라 했는지에 관한 설명은 없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살리려 베타니아로 가실 때 제자들은 말린다. 유다인들이 해코지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고 외친다(요한 11,16). 그의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애초에 그는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렇지만 스승님을 만나자 급변한다(요한 20,28). 소신이 강했지만, 잘못을 알자 즉시 승복했던 것이다.
요한복음 21장에는 부활의 주님께서 티베리아스 호숫가에 나타나신다. 실망한 제자들을 다독거리기 위해서였다. 그곳에는 베드로와 야고보 형제, 나타나엘과 토마스 등이 고기를 잡고 있었다. 토마스 역시 갈릴래아 출신이었기에 함께 어울렸을 것이다.
전승에 따르면 토마스는 인도까지 가서 선교했다. 그곳의 어떤 왕의 부탁으로 왕궁을 짓는 목수로 있으면서 선교했다고 한다. 토마스 사도가 건축가와 목수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는 이유다. 인도 반도의 서쪽에 위치한 케랄라 주에는 기독교인이 많다. 이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토마스 사도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사도는 기원후 72년에 밀라포레라는 작은 도시에 순교했다. 토마스 사도의 유해는 4세기 인도에서 에데사(Edessa)로 모셔졌고 일부는 훗날 로마로 옮겨졌다. 에데사는 오늘날 터키의 우르파(Urfa)로 시리아와의 국경지대에 있다. 1972년 교황 바오로 6세는 토마스 사도의 순교 1900주년을 기해 인도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한편 토마스는 성모 마리아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왔지만 돌아가신 뒤였다. 참배를 위해 그가 무덤 문을 열었는데 시신은 없고 시신을 쌌던 천만 있었다. 이 전승은 훗날 성모 승천 교리의 이해를 돕는 자료가 되었다.
6세기부터 그의 유해를 에데사로 옮긴 것을 기념하는 축제가 7월 3일 열렸다. 서방 가톨릭은 이날을 축일로 지정했고 동방 정교회는 10월 6일을 축일로 지내고 있다. 흔한 영어 이름 중의 하나인 톰(Tom)은 토마스의 애칭이다.
[2012년 12월 23일 대림 제4주일,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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