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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16: 베타니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16 조회수4,284 추천수1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16) 베타니아


신약성경에 따르면, 베타니아는 예수님의 친구들인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가 살았던 마을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죽은 라자로를 예수님이 다시 살리신 일(요한 11,1-54)로도 유명하다.


■ 위치와 지형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의 올리브 산 근처의 벳파게와 인접한 곳이다. 이것은 마르 11,1의 언급과 일치한다. 곧 예수님은 “예루살렘 곧 올리브 산 근처 벳파게와 베타니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제자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도록 말씀하신다.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2.7km 떨어져 있는데, 올리브 산을 넘어 예리코로 내려가는 길 위에 위치한다. 이 위치는 요한 11,18에서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열다섯 스타디온쯤 되는 가까운 곳”이라고 소개한 것과도 부합한다.

베타니아(Bethany)는 본디 라자로의 무덤을 중심으로 생겨난 마을인데 오늘날에도 “라자로의 고장”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랍어 엘-아자리에(El-Azariyeh)라고 불린다. 이 아랍어 명칭은 같은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라자리온(Lazarion), 라틴어 라자리움(Lazarium)과 관련된다. 라자리온이라는 명칭은 330년경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뿐 아니라 그 이후의 비잔틴 시대와 중세 시대의 순례자들에게도 알려져 있었다. 베타니아가 라자로의 무덤을 중심으로 형성된 방식은 헤브론(Hebron)의 경우와 유사하다. 헤브론은 이스라엘의 성조들인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부부의 무덤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어원적으로 베타니아는 히브리어로 베트-아니(Bet ani, 가난한 이의 집) 혹은 베트 아나니야(Bet ananya, 아나니야의 집)에서 유래하였다.


■ 구약성경의 베타니아

느헤 11,32에는 바빌론 유배 이후에 벤야민의 자손들이 살았던 마을들 중에 “아나톳, 놉, 아난야”가 소개된다. 이 중 아난야(Ananyah)는 현재의 베타니아 보다 조금 더 언덕 위에 위치하였다. 1949-1953년에 있었던 고고학적 탐사 결과 아난야의 흔적이 발굴되었는데, 이곳에는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후 14세기까지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신약성경의 베타니아

루카 10,38-42에 따르면, 예수님이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마르타라는 여자가 그분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는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으나, 그녀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이에 예수님은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42절)

마르타와 마리아는 라자로와 함께 요한 11,1 이하에서도 소개된다. “어떤 이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사는 베타니아 마을의 라자로였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인데, 그의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베타니아에 가신 것은 라자로가 죽은 후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 지나 뒤였다. 예수님이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라고 큰 소리로 외치시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44절)

그리고 요한 12,1-8에 따르면, 예수님이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이 베타니아는 예수님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던 곳(1절)으로 소개된다. 그곳에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2절) 그때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려서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3절)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마르 14,3-9와 마태 26,6-13에도 소개된다. 마르 14,3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마침 식탁에 앉아 계시는데,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마태 26,6-7에도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떤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다가와, 식탁에 앉아 계시는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라고 기록한다.

그리고 루카 복음서는 베타니아를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으로 소개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루카 24,50)

한편 요한 복음서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베타니아와는 다른 베타니아가 언급된다. 이곳은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요한 1,28)로 소개된다.


■ 중요 순례 장소

① 라자로 성당

성 예로니모는 390년에 베타니아에 있었던 성당의 존재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이 첫 번째 성당은 지진으로 인해 파괴되었는데, 이 성당 터 위에 기원후 6세기의 두 번째 성당이 세워졌다. 두 번째 성당은 첫 번째와 같은 너비를 가졌으나 동쪽으로 반원형 부분이 13m 이동되었다. 이것은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는 증거인데, 첫 번째 성당을 알고 있던 에제리아(Egeria)가 384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라자리움 자체뿐 아니라 온 주변 들판을 가득 채웠다.”고 기록한 바 있다.

오늘날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라자로 성당은 성지에 많은 성당을 건축한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 바를루치(Barluzzi)에 의해서 1954년에 세워졌다. 기념 성당 안에는 무덤에서 나오는 라자로의 모습, 예수님을 맞이하는 마리아와 마르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4세기와 6세기 성당의 유적이 현재 성당 뜰과 성당 안의 모자이크 바닥에서 발견된다.

② 라자로의 무덤

라자로 성당에서 북쪽으로 약 20m 떨어진 곳에 라자로의 무덤이 있다. 14세기 말에 라자로 무덤의 입구에 이슬람 사원이 세워졌다. 그래서 그 후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1566년과 1575년 사이에 현재의 입구를 만들었다. 입구를 통해 27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바위를 깎아 만든 라자로의 무덤을 만날 수 있다.

*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 · 고고학연구소에서 성서학박사학위(S.S.D.)를 취득하였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빛, 2013년 4월호, 송창현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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