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2) 바람은 하느님의 종이다
하느님 나타나심의 징조 '바람'
우리는 바람이 공기의 흐름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구약성경을 읽을 때는 과학적 시각으로 바람을 이해하기보다 신학적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고대 근동 세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바람 신은 큰 힘이 없었지만, 이집트에서는 강력한 바람 신 '슈'가 있었다.
구약성경에 바람에 날개가 달렸다는 표현이 나온다는 것을 지난호에서 말했다. 이런 상상의 동물이 성경에 나온다고 해서 비과학ㆍ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당시 사람들은 신학적 의미를 부여해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 또한 우리 세대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있듯이 그 시대 사람들도 당시 생활 속 언어로 하느님을 찬미한 것이다.
완전 수 4와 10의 의미
고대 근동의 상징 숫자인 '4'는 동서남북 온 세상을 상징하는 완전한 수로 사용됐다. 완전 수이자 길한 숫자인 '4'에 '10'이란 또 다른 완전 수를 곱한 '40'은 더욱 완벽하고 충만한 시간을 표현하는 데 사용됐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보면 히브리 사람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에서 40년 세월을 보냈고,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 단식한 모습이 나온다.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유혹을 받았다. 고대 근동인들에게 40이란 숫자는 이처럼 온전히 충만한 시간을 뜻했다. 40을 채웠다는 사실은 주님이 마련해주신 시간을 다 채웠다는 뜻도 된다. 솔로몬과 다윗은 이스라엘의 훌륭한 임금이었다. 주님이 허락하고 마련해주신 시간을 꼭 채워 40년간 다스렸다.
구약성경에는 네 개의 바람이 등장한다. 이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온전한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하늘 네 끝에서 오는 네 바람'을 하느님의 명령을 받는 존재로 묘사했다.(예레 49,35-36 참조) 네 가지 바람을 하느님이 쓰시는 무기로 표현한 것이다. 유배 이후에 나온 다니엘서에서도 하늘에서 불어오는 네 큰바람이 큰바다를 휘저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다니 7,2 참조) 사방의 바람은 하느님께서 조정하신다.
바람은 하느님의 종이다
이집트 탈출 사건에는 10개 재앙이 나온다. 이 중 8번째 재앙인 메뚜기 떼 재앙은 바람(동풍)이 일으킨 것이다.(탈출 10,13 참조) 공포심을 느낀 파라오는 모세에게 메뚜기를 거둬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하느님은 바람(서풍)으로 메뚜기 떼를 없애셨다.(탈출 10,19 참조) 하느님은 이처럼 동풍, 서풍 등 바람을 마음대로 조정하셨다. 탈출기에서 하느님은 파라오와 싸웠다. 당시 신으로 여겨진 파라오는 하느님의 힘에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또한 하느님은 우주에서 큰 분이시란 것을 알고 있었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바람)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2). 하느님의 영은 바람을 뜻한다. 하느님은 천지창조 때부터 바람을 부리셨다. 하느님의 영이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는 것은 하느님이 바람으로 혼돈을 제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권능을 나타내기 이전부터 하느님은 바람을 제어하셨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바람은 하느님이 나타나신다는 징조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신의 자리를 잃고 그저 하느님 도구로 '탈신화화'했던 바람의 '재신화화'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이 엘리야 예언자에게 나타나실 때 몇 가지 징조 중 첫 번째가 루아흐(바람)이다. 루아흐는 주님 현현의 첫 번째 표징이었다.(1열왕 19,11-13 참조)
하지만 바람이 파괴의 도구가 될 때도 있다. 하느님이 우리를 바람으로 꾸짖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를 내몰고 내쫓으시어 벌하시고 샛바람이 부는 날 그를 거센 바람으로 몰아내셨다'(이사 27.8), '주님의 바람이 불어오리니 그의 샘은 마르고 우물은 메말라 버리리라'(호세 13,15). 구약성경에서 동풍, 샛바람은 이처럼 하느님 꾸짖음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마음에 있는 바람(소망)을 하느님 바람으로 가득 채워주시길 기도하자.
[평화신문, 2013년 4월 21일, 정리=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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