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해설과 묵상 (43)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주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판관 6,13)
판관기 6장은 기드온의 소명설화다. 곡식은 보통 바람이 잘 통하는 마당에서 타작해야 하지만,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워 은밀한 곳, 곧 바위를 깎아 만든 포도주 틀 속에서 곡식을 털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소명을 주는 이야기다.
주님의 천사가 기드온에게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지만, 기드온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주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저희를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겨버리셨습니다”(판관 6,13).
40대 어떤 자매님의 이야기다. 남편은 자기 집을 하숙집으로 아는지, 도대체 아내와 자녀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침에 밥 먹고 집을 나가면 무엇이 그리 바쁜지 밤늦게 들어오기 일쑤였다. 자녀들도 크니까 어머니와 함께 하기보다는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기 바빴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새벽에 들어와 자리에 누우면 점심때가 지나도록 잠만 잤다. 어머니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남편과 자식들이 하는 꼴을 보며 이 자매님은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중세의 기사처럼 나를 떠받들어주고, 평생 그렇게 할 것처럼 하던 남편이 이렇게 무관심한 목석으로 바뀔 수 있단 말인가?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이 나에게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단 말인가’이 자매님은 자신이 세상에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구들에게 버림받고, 친구와 이웃들에게 버림받아 혼자 세상에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40대의 아줌마가 가출해서 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 언뜻 생각난 곳이 나환자촌이었다. 성당에서 봉사활동으로 몇 번 간 적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환자촌이 저만치 보이는 곳에 다다랐을 때, 느티나무 밑에 어떤 노인이 하염없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냥 바람을 쐬러 나온 할아버지려니 했더니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땅바닥에 묵주를 놓고 엄지발가락으로 누르고 있었다.
“할아버지, 왜 그렇게 묵주를 땅바닥에 놓고 기도하십니까”
“보다시피 나는 문둥병에 걸려 손가락과 발가락을 다 잃었습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내게 엄지발가락 하나를 남겨주셔서 이렇게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이지요. 이 발가락 하나 덕분에 땅바닥에 묵주를 놓고 묵주알을 돌릴 수 있으니 얼마나 하느님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자매님은 그 자리에서 퍼뜩 깨달은 바가 있어 발길을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하나 남은 발가락에 감사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무엇이 불행하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미디안족의 침략을 받아 괴로워할 때, 기드온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버리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오히려 하느님은 더 가까이 계셨다. 우리는 종종 어렵고 힘들 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내게 관심이 없을 때,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하느님에게서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나처럼 외로운 사람은 없다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때가 사실은 하느님께서 가장 가까이 계시는 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묵상주제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판관 6,12)
기드온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은 곧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여기서 ‘힘센 용사’를 내 이름과 세례명으로 바꿔 이 성경구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2013년 4월 28일 부활 제5주일(이민의 날)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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