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풀이 FREE] <물과 와인> 생명수 편 “사람은 와인 없이 살 수는 있으나 물 없이는 살 수 없고……”(고대 속담).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은 사실 우리나라 금수강산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스라엘에서 기름진 땅은 갈릴래아로 올라가야만 구경할 수 있고, 국토 절반이 광야다. 이렇게 물 귀한 이스라엘에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와 함께 “우리에게 일용할 물을 주시고”가 저절로 묵상이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예로부터 가나안은 물 문제를 해결하려고 수맥을 찾아 우물을 팠고 가뭄이 들면 이집트, 모압 등으로 피난을 갔다. 사실 이런 물 부족 때문에 “브에르 세바”라는 이름도 탄생하지 않았나? 아브라함의 종들이 판 우물을 두고 아비멜렉의 종들과 분쟁이 일자, 암양 일곱 마리를 걸어 우호 조약을 맺은 후 브에르(우물) 세바(일곱/조약)라 했다(창세 21). 이렇게 생명수를 제공하는 우물은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사교 장소가 되어, 아브라함의 종이 이사악의 아내를 구하러 왔을 때 우물가에서 레베카를 찾았고(창세 24,11), 야곱도 라헬을 우물가에서 만났다(창세 29,10). 그러나 요새 형태의 므기또(아마게돈)나 고대 예루살렘(다윗의 성)은 샘이 아래쪽 깊은 곳에 있어서 물 긷는 일이 꽤 힘든 노동이었다. 긴 내리막을 내려갔다가 무거운 물을 짊어지고 다시 올라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 긷는 일은 종이나 여인들이 했고,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이스라엘을 속인 기드온 사람들을 물 긷는 종으로 만들었던 것이다(9,21). 저 속담처럼, 물 귀한 이스라엘을 암시하는 성서 구절은 많다 : (시편 42,2 참조), (이사 12,3참조). 예레미야는 하느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로 휩쓸리는 남 유다 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비판했다 : “……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2,13). 그리고 이와 같은 생명수 사상은 신약에 이어져 예수님 말씀에 반영되었다 :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 [2012년 10월 28일 연중 제30주일 인천주보, 김명숙 소피아] 여든 해 정도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살이는 고달프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기쁨으로 그 무게를 거뜬히 견딘다. 그리고 적당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술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고대 이스라엘도 술을 즐기는 풍류를 누렸고, 포도 추수는 축제적인 사건이었다. 어린 시절 소풍 가던 날, 김밥 싸시는 어머니 옆에서 꼭지를 얻어먹고 소풍에서 먹게 될 김밥 때문에 즐거워한 것처럼, 포도를 가꾸는 사람들은 두고두고 마시게 될 와인을 생각하며 콧노래를 불렀으리라. 그래서 코헬렛 10,19는 “술이 인생을 즐겁게 한다”했고, 판관 9,27에는 “포도밭에서 즐겁게 노래하며 포도를 따서 밟은 다음, 자기들의 신전으로 가서 먹고 마시며”라는 구절이 있다. 반대로 이사 16,10에는 파괴된 모압을 빗대어 “과수원에서는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포도밭에서는 환호도 환성도 울리지 않는다. 포도 확에는 포도 밟는 사람이 없고 흥겨운 소리가 그쳐 버렸다”라고 애도했다. 고대 근동에서 포도를 경작한 흔적은 기원전 3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도는 노아의 홍수 이후 최초로 경작한 식물이었고(창세 9,20), 가나안에도 포도가 많아 모세의 정탐 대는 에스콜 골짜기에서 포도송이를 따 왔다(민수 13,23). 포도주는 가나안이 이집트로 수출하던 일등 상품이기도 했고, 예수님이 새 계약을 맺으실 때 빵과 함께 포도주가 나온다. 게다가 와인은 치유의 효과가 있어서 약으로 사용했다. 루카 10,30-35의 ‘사마리아인 비유’를 보면 강도 당한 사람을 포도주로 치유했고,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위를 생각해서 포도주를 마시라는 권고를 했다(1티모 5,23 참조). 서기 5세기를 살았던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붉은 와인과 끓인 와인은 소화에 좋고 투명한 와인은 방광에 좋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과연 사람은 와인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와인이 있어야 삶에 윤기를 더하는 듯하다. 그러나 와인을 한꺼번에 많이 마시는 것에 대한 경고도 있다(에페 5,18 참조). 방탕과 방종으로 빠지지 않고 와인을 즐기는 삶은 과연 하느님의 축복인 듯하다. 우리 선현들이 적당한 술을 곁들여 인생을 즐겼던 것처럼 시편 104,1. 15도 이렇게 노래한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와인을 얻게 하시고 기름으로 얼굴을 윤기나게 하십니다. 또 인간의 마음에 생기를 돋우는 빵을 주십니다.” [2012년 11월 4일 연중 제31주일 인천주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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