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풀이 FREE] 헤브론과 권력 암투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신 구약의 중심지 헤브론, 아브라함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 자취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이어받을 후손을 약속하셨고, 세 천사가 방문하여 사라의 잉태를 알렸다. 그러다가 123세의 나이로 아내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헤브론 막펠라 동굴에 안장했고, 나중에 자신도 함께 묻혔다. 뒤이어 이사악과 레베카, 야곱과 레아 또한 막펠라에 묻혔으니, 헤브론에는 아브라함의 가족 무덤이 있는 셈이다(창세기 참조). 이스라엘 왕정 시대의 헤브론은 다윗을 지원하는 베이스가 되기도 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전에 헤브론 군주가 되어 칠 년을 다스렸기 때문이고, 전체 국왕으로 옹립되는 과정에는 헤브론의 지원과 협조가 있었다(2사무 2,1-4). 다윗은 헤브론에서 다진 기반을 기초로 사울 가문을 지지하던 지파들을 합병하고 통일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했을 때도, 먼저 헤브론으로 가서 왕이 되고 지원 세력을 얻었는데, 압살롬이 다윗의 헤브론 재위 동안 태어난 왕자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1사무 3,2-5). 아마도 압살롬은 고향 헤브론의 지원을 발판으로, 헤브론이 새로운 수도 예루살렘을 견제하고자 했던 마음을 최대한 악용했던 듯하다. 이렇게 헤브론은 압살롬의 반역에 동조했지만, 예루살렘 출신들은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왕자가 왕위를 잇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권력 암투 속에서 헤브론 출신 왕자들은 결국 숙청당하고, 예루살렘 출신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돈다는 옛말처럼 구약 때 치열했던 권력 암투가 현대까지 이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유다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에서 분쟁의 중심이 된 헤브론.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이후, 헤브론은 다수의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과 소수의 유다 관할권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헤브론에는 팔레스타인 아랍과 이웃하여 살고 있는 유다 정착민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 군인들이 항상 주둔하고 있다. 한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나왔다는 아랍과 유다 인들의 민족적 투쟁은 처절할 정도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아진 자손들이 아옹다옹 싸우는 문제는 자식들 사이에서 번민하고 있을 아버지 아브라함을 생각나게 한다. [2012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일 인천주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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