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풀이 FREE] 사론의 수선화
몇 년 전 이스라엘에서 지중해를 찾았다가 모래 속에 핀 수선화를 만났다. 그 꽃이 바로 아가서에 나오는 ‘사론의 수선화’라는 것이다. 성서에 나오는 꽃 하나라도 실제로 발견할 때의 그 기쁨이란.
‘솔로몬의 노래’라 불리는 아가서 2,1에는 연인에 대한 애정으로 사무친 자신을 ‘사론의 수선화’라 노래한 구절이 있다 : ‘나는 사론의 수선화, 골짜기의 나리꽃이랍니다.’ 사론의 수선화와 함께 비유된 ‘나리 꽃’은 개양귀비나 아네모네, 백합 등으로 본다. 고상하고도 청초한 모습 때문에 예로부터 나리꽃을 마리아의 눈물로 비유했는데, 전승에 따르면 아들의 처형을 지켜보던 마리아의 눈물이 나리꽃으로 변했다 한다.
사실 아가서는 에로틱한 색채 때문에 논란이 많았지만 연인 간의 애절한 연모는 예수님과 교회 사이의 사랑으로 재해석되었고, 이런 과정 속에 사론의 수선화는 예수님을 상징하게 되었다. 모래 속에서 백합처럼 피어난 수선화를 보노라니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거친 자연을 헤치고 수선화가 피어나듯이, 다섯 개의 십자가 상처로 척박한 시온에서 피어난 예수님이 수선화의 다섯 꽃잎 속에 승화된 느낌……. 그러다가 무궁화가 사론의 수선화 중의 하나 임을 알았을 때 그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우연히 땅 밑에서 보물을 캐낸 듯한 기쁨이라 해야 할까? ‘영원한 꽃’ 무궁화는 동이족의 꽃이었고,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에게 내린 어사화였을 정도로 우리 민족의 무궁화 사랑이 지극하지 않았던가? 한 민족의 무궁화 사랑과 솔로몬을 향한 연인의 수선화 사랑……. 그리고 주님의 상처가 담긴 다섯 꽃잎. 왠지 우리나라 국화를 대하는 느낌이 새로워지는 듯했다.
요즘 알 수 없는 이유로 천대 받고 있는 우리나라 수선화 무궁화 꽃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할 것 같다. 서슬 퍼런 지중해를 걷다가 우연히 사론의 수선화를 발견한 것처럼,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부는 인생의 해변 길을 걷다 보면, 뜻밖의 보물과 놀라움들이 터져 나와 선물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이 파란 만장한 인생길에서 발견한 사론의 수선화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지중해를 거닐다가 선물처럼 발견한 사론의 수선화와 그 속에 녹아 있는 임의 숨결을 묵상하면서, 늘 함께 하시는 나의 하느님을 알아보는 끈기를 청하고 싶다.
[2012년 11월 25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인천주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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