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해설과 묵상 (45)
“스켐의 모든 지주와 벳 밀로의 온 주민이 모여, 스켐에 있는 기념 기둥 곁 참나무 아래로 가서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웠다.”(판관 9,6)
기드온이 스켐 출신의 여자에게서 얻은 아비멜렉은 외가쪽 스켐 사람들의 도움으로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학살했다. 그러고나서 아비멜렉은 스켐 장로들에 의해 임금으로 추대되었다. 요탐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스켐의 장로들에게 우화로 그 잘못을 경고했다.
우화의 내용은 이렇다. 올리브 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다른 나무들을 다스리는 임금의 자리를 마다했는데, 가시나무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임금이 되어달라는 청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시나무에서 불이 나와 모든 나무를 불살라버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요탐의 이 우화대로 얼마 뒤 아비멜렉은 스켐을 포위하여 거의 전멸시켰으며, 아비멜렉 자신도 데베츠를 포위 공격하다가 한 여인이 던진 맷돌짝에 머리를 맞아 죽었다.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은 ‘임금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로 임금이 되려고 시도했던 사람인데,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스켐은 유서 깊은 도시요 성소였다.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갱신한 곳이 스켐이었다(여호 24장 참조). 그만큼 종교적 전통이 있는 도시였으며, 지도급 인사와 지식인이 많은 도시였다. 그런 스켐의 장로들이 아비멜렉에게 동조하여 판관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학살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세속의 권세와 영화를 위해 신앙을 이용하는 행위다. 스켐의 장로들에게 ‘성(聖)’은 ‘속(俗)’을 위한 방편일 뿐이었다. 그러나 요탐은 달랐다. 목숨을 걸고 아비멜렉의 횡포와 스켐 장로들의 잘못을 고발했다.
스켐 장로들의 타협적인 태도와 요탐의 과감한 고발을 보면서, 19세기말 프랑스 사회를 두 쪽으로 갈라놓았던 드레퓌스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부유한 유태인 방직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1889년 육군 대위로 진급했다. 1894년 육군본부에 들어갔으며, 그 해 독일 대사관 장교에게 군사기밀을 팔아넘긴 죄로 고발당했다. 그는 프랑스령 기아나 앞 바다의 ‘악마의 섬’에 있는 범죄자 수용소에서 종신형을 살도록 선고받았다. 악의적인 반유태주의가 이끌던 언론은 이 판결을 환영했다. 특히 ‘라 리브르 파롤’(La Libre Parole) 신문은 드레퓌스 대위를 불충스런 프랑스 유태인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몇 가지 의혹이 싹트기 시작했다. 드레퓌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편지의 필적이 에스테라지 소령의 것이라는 증거를 피카르 중령이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에스테라지가 군법회의에서 무죄로 풀려나고 오히려 피카르가 체포되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드레퓌스 사건의 재심을 요구하는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그 선봉에는 소설가 에밀 졸라가 있었다. 1898년 1월 13일 에밀 졸라는 ‘오로르’(Aurore)지에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으로 글을 실었다. 내용은 군부가 드레퓌스 사건을 잘못 재판한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육군본부의 명령으로 에스테라지를 풀어주었다고 고발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졸라는 반 드레퓌스파와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드레퓌스를 지지하는 지식인들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1906년 대법원은 드레퓌스 대위가 무죄임을 선언했으며 그를 복직시켰다. 드레퓌스 대위는 복권되어 국가훈장(레지옹 도뇌르)을 받았으며, 소령으로 진급한 뒤 전역했다. 그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중령으로 진급해 군수보급 부대를 지휘했다.
묵상주제
스켐의 지식인들과 지도급 인사들은 아비멜렉의 행동이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 못하고, 오히려 아비멜렉과 타협하고 그를 도와주었다. 그들은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학살한 공범이었다. 어느 사회든지 불의가 용납되고 폭력과 야만이 난무할 때, 정의를 외치는 것은 지식인의 몫이다. 요탐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지식인은 비판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2013년 5월 12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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