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해 · 창간 86주년 기획 -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 (10) 역사의 예수님에 관한 연구 ② 가톨릭 신학계의 역사적 예수 연구 동향
충실한 성경 해석 위에 예수의 인격 · 메시지 파악
역사적 예수 연구는 개신교 학계에서는 라이마루스(Reimarus)를 필두로 이미 18세기부터 시작되었으나 가톨릭교회에서는 20세기 중반 이후에 주목을 받고 본격적으로 논의가 전개되었다.
이는 가톨릭교회가 ‘섭리하시는 하느님’(1893년), ‘성령의 영감’(1943년)과 같은 교황의 회칙, 그리고 바티칸공의회의 ‘계시헌장’(1965년)을 통하여 역사비평과 같은 학문적인 연구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와 위험성을 경고하고 성경이 성령의 감도와 교회의 전통 안에서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는 성경 해석의 원칙을 천명해왔기 때문에 가톨릭 학자들은 교의와 전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역사적 예수 연구에 쉽사리 뛰어들기 어려웠던 것이다.
1970년대 이후 가톨릭 학자들이 전개한 역사적 예수 연구의 다양한 사례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첫째, 역사비평을 별다른 비판없이 적극 활용하는 이들이 있다.
본래 교의신학자인 스킬레베엑크스(E.Schillebeeckx)는 역사비평의 연구 성과를 창의적으로 재구성하여 「예수」(Jesus, An Experiment in Christology)라는 책을 1974년에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나자렛 예수의 인격과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여 이를 그리스도론의 근거로 삼음으로써 가톨릭교회 안에 역사적 예수 연구를 공론화시킨 장본인이다.
이처럼 역사비평을 적극 활용하여 역사적 예수 연구를 전개한 학자들로는 그닐카(J.Gnilk, 「나자레 예수, 말씀과 역사」, 분도출판사, 2002)와 마이어(J.P.Meier, 「A Marginal Jew, Rethinking the historical Jesus」, vol 1-4)가 대표적이다.
그닐카와 마이어는 예수 전승에 대하여 역사비평에서 사용되는 판단 기준을 적극 수용한다.
특히 마이어는 그리스도교 신자, 유다인, 이슬람신자, 무신론자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오로지 학문적인 토론으로 예수 전승의 역사적인 진실을 재구성하는 일종의 학문적인 콘클라베를 제안하면서 그 가상적인 콘클라베의 결과를 현재까지 4권의 방대한 저서에 담아 출판하였다. 마이어는 이 책의 첫째 권에서 예수 전승의 역사성 판단 기준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당혹성의 기준(The Criterion of Embarrassment)은 초대교회로 하여금 당혹감이나 어려움을 불러 일으킬 만한 예수의 말과 행동에 초점을 둔다. 예컨대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초대교회로서는 호교론이나 그리스도론의 입장에서 당혹감을 주는 사건이었다
2)불연속성의 기준(The Criterion of Discontinuity)은 일찍이 케제만이 제시한 비유사성(dissimilarity)의 기준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당대의 유다교나 초대교회로 연역될 수 없는 예수의 행동이나 말씀에 초점을 맞춘다. 이 기준에 적용될 수 있는 범례로는 요한에 대한 예수의 최상의 평가 말씀(루카 7,28ㄱ) 등이 있다.
3)다수적 증언의 기준(The Criterion of Multiple Attestation)은 예수의 말이나 행위가 한 가지 전승에서만 언급되지 않고 다양한 전승층(예컨대 마르코, Q, 요한)에서 발견되는 현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최후의 만찬에서의 성찬 제정의 말씀(마르 14,22-25 1고린 11,23-26 참조 요한 6,51-58)과 이혼 금지 말씀(마르 10,11-12 루카 16,18(=Q) 1코린 7,10-11)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밖에도 일관성의 기준(The Criterion of Coherence)이나 거부와 처형에 대한 기준(The Criterion of Rejection and Execution)과 함께 다양한 2차적인 기준들이 활용된다.
둘째, 비유사성의 기준과 같은 역사비평 방법을 수용하되 이는 최소주의적인 방식일 뿐이며 오히려 예수를 당대의 유다교 지평에서 폭넓게 이해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페로(Ch.Perrot)는 역사비평 안에 함축되어 있는 전제로, 가장 오래된 전승이 역사적 진실이라는 믿음을 기원신화라고 비판하면서 사실 초대교회의 신앙과 성서 언어라는 이중의 차이로 말미암아 예수는 역사와 늘 일정한 거리를 가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페로는 역사적 예수도 아니요 예수에 관한 역사도 아닌 「예수와 역사」(가톨릭 출판사, 1985)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으로 자신의 예수관을 전개한다.
셋째, 초대교회가 처음에는 신앙의 그리스도를 고백하다가 나중에야 복음서를 저술하여 역사를 추구하였기에 신앙은 이처럼 역사를 선행한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슈나켄부르크(R.Schnackenburg,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분도출판사, 2009)에 의하면 복음서들은 신앙의 입장에서 나자렛 예수의 역사를 회상했기에 네 복음서는 저마다 네 가지 그리스도론에 입각하여 네 가지 예수의 모습을 그려준다.
그는 “역사비평적 방법을 사용하는 학문적 노력을 통하여 나자렛 예수의 역사적인 모습을 신뢰성 있게 그려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거나 또는 오직 불충분하게만 가능하다”고 천명한다.
넷째, 슈나켄부르크의 입장을 계승하되 이를 넘어서고자 시도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나자렛 예수」(1~2권, 바오로 딸, 2012)에서 교회가 인정한 역사비평을 수용하되 이를 정경연구의 방법으로 보완하고자 한다.
역사비평은 성경의 개별 문헌들을 역사적이고 분석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는 데에 장점이 있지만, 성경 전체의 통일성을 보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계시헌장 12항을 인용하면서 베네딕토 16세는 성경 전체의 내용과 통일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전체 교회의 살아있는 전승과 신앙의 유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경의 통일성을 존중하는 독서법은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전개된 정경 비평(canonical criticism)을 따른 것이다. 교황에 의하면 성경의 개별 문헌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읽는 정경 해석은 역사비평과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유기적으로 서로를 발전시켜 신학 본연의 모습을 갖추게 한다고 말한다.
다섯째, 티모티 존슨(L.Timothy Johnson)은 「The Real Jesus」(1996)에서 ‘예수 세미나’의 방법론적인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역사적 예수는 실제 예수가 결코 아니며, 예수는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통하여 알려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초대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하여 인간학적, 역사적, 문학적, 종교적 연구를 병행하는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아울러 그 한계도 지적한다.
여섯째, 베르거(K.Berger)는 「예수」(1권, 성 바오로, 2013)라는 책에서 역사비평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서 어제의 모더니즘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괴로울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하며 베르거는 예수 연구의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신앙과 이성, 예수 당대의 역사와 현대의 역사를 넘나들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자렛 예수를 그려낸다.
■ 종합
가톨릭 학계에서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나자렛 예수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는 두가지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그것은 무엇보다 성경 본문에 대한 충실한 주석 위에서 나자렛 예수의 종말론적인 인격과 메시지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해석학적 태도는 교황청 성서위원회가 1993년에 발표한 ‘교회 안의 성서해석’이 폴 리꾀르(P.Ricoeur)의 성서 해석학을 지지하였듯이 본문과 거리를 두고 본문의 세계를 주석학적으로 충분히 밝혀 놓은 다음 그 본문이 제시하는 세계 앞에 나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과 상응한다.
두 번째는 나자렛 예수를 이해하는데 사용되는 역사비평 방법의 정당성과 한계를 동시에 인정한다는 점이다. 가톨릭 학자 가운데 역사적 예수가 실제 예수라고 주장할 사람은 없다. 단지 역사비평 방법에 대한 의존 정도가 학자마다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가톨릭 학계에서 대략 공감할 수 있는 나자렛 예수의 역사적인 면모는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다음호에서 우리가 다룰 주제이다.
* 백운철 신부는 1985년 사제로 서품됐으며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대학원 교학부장 및 가톨릭대학교 사목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2011년부터 ‘신학과사상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6월 2일, 백운철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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