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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여인: 에스테르 - 불의와 억압에 맞서 과감히 말하고 행동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4 조회수2,761 추천수1
[성경 속의 여인] 에스테르

불의와 억압에 맞서 과감히 말하고 행동


에스테르기의 핵심내용

에스테르기는 페르시아 왕국에 흩어져 생존하던 유다인 공동첵 크세르크세스(그리스 말임. 히브리 말로는 ‘아하스에로스’라 지칭됨) 임금의 총애를 얻었던 에스테르를 통해 구출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크세르크세스 임금은 질투심에 가득 찬 고관 하만의 모함에 말려들어 모든 유다인을 절멸시키라는 명령은 내린다. 에스테르는 목전에 다가온 자기 백성의 몰살을 막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개입한다. 마침내 그는 크세르크세스 임금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다. 그 결과 하만은 에스테르의 양아버지인 유다인 모르도카이를 죽이려고 세웠던 그 말뚝에 도리어 매달려 죽는다.

히브리 말 에스테르기 원본에는 하느님이 그 어떤 장면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이 오로지 권력과 계교로 움직인다는 인상마저 준다. 그래서 그리스계 유다인들은 칠십인역 에스테르기에서 하느님의 이름과 업적을 첨가하여 이야기 전체에 종교적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말 에스테르기 원본의 이야기는 신학적 차원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곧 하느님께서는 역사의 우연한 사건의 이면에, 인간의 행동 이면에 존재하시고 활동하신다. 역사의 주인은 그 어떤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시다. 그분께서는 유다 백성을 선택하신 분이다. 이런 선택은 함께 살던 백성들 가운데 유다인들만을 따로 격리시키는 데서 분명하게 표현된다. 이제 이 유다인들은 외적으로만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유배를 겪고 있다. 유배지에서 멸시를 당할 뿐만 아니라 절멸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성실하게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항상 깨뜨렸어도, 그래서 유배가 계약파괴에 대한 징벌로 해석되었을지라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어김없이 지키신다.

그리고 유다인 가운데는 에스테르와 모르도카이처럼 죽음의 위험에서도 하느님과 그분의 율법에 충실함으로써 하느님의 성실에 감사하는 인물들이 항상 존재한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께 충실하는 인물들을 통하여 활동하시지 역사 안에서 기계적으로 활동하시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모르도카이는 “인간의 영광을 하느님의 영광 위에 두지 않으려고”(에스 4,17⑦) 한다. 에스테르는 먼저 자신의 민족과 혈통을 비밀에 부치고(에스 2,10. 20 참조), ‘하다싸’라는 히브리 이름을 숨기고 그 의미에 상응하는 페르시아 이름으로 지칭된다(에스 2,7 참조). 그러나 다급한 곤경의 순간에 그는 유다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크세르크세스 임금에게 자신의 민족과 혈통을 솔직하게 밝히고 자기 민족이 처한 위험을 알린다. “사실 저와 제 민족은 파멸되고 죽임을 당하고 절멸되도록 이미 팔려 나간 몸들입니다”(에스 7,4). 여기에서 크세르크세스 임금은 에스테르가 거짓말로 자신을 기만하고 속인다고 의심할 수 있었는데도, 에스테르의 간청을 받아들여 유다인들을 다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거두어들인다.


감사와 기쁨의 축제인 푸림절

하느님의 도움을 간절히 바랐던 에스테르의 기도와 희망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의 정의는 유다인들을 모두 절멸시키라는 법령을 취소시킬 뿐만 아니라 유다인들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원수들에게 형벌을 내릴 것까지도 요구한다. 하만이 권좌에서 물러나 죽음을 당한 뒤에 페르시아에서 일어난 잔인한 복수는 분명 야만적 행동이었다. 크세르크세스 임금은 “각 도시에 살고 있는 유다인들이 한데 모여서 자기들의 목숨을 지키도록 봉기하고, 그들에게 대적하는 민족과 각 주의 무장한 무리들을 어린이와 여자 할 것 없이 파멸시키고 죽여서 절멸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도록 윤허하였다”(에스 8,11). 에스테르는 이런 잔인한 보복행위를 거리끼거나 방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수사 왕성에 있는 유다인을 위해 “복수의 둘째 날”을 주도한다(에스 9장 참조).

우리는 하느님 정의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이런 전쟁을 오늘날의 눈으로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시간에서 이 전쟁은 어디까지나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친히 당신 백성의 원수들과 싸우는 전쟁이다.

원수들을 향한 소름끼치는 응징과 복수에도 불구하고 에스테르의 이야기는 기쁘고 흥겹게 끝난다. 유다인들은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를 벌이고, 모르도카이는 대량학살 후의 “안식일”을 해마다 기억과 감사의 날로 지내도록 확정한다(에스 9,21 참조). 그는 이제 페르시아에서 하만의 자리에 앉아 고관이 되고, 임금 다음가는 권력과 세력을 누린다.

에스테르기는 유다인의 큰 명절들을 알려주고 분류하는 ‘다섯 두루마리’에 속한다. 오늘날 성경 연구에 따르면, 에스테르기는 역사적인 실제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기보다는 유다인들의 봄축제에 해당하는 푸림절을 언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유롭게 집필되었다고 한다. 파스카의 축제처럼 푸림절은 긴박한 곤경에 처한 백성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구출되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축제이다. 에스테르기에서 이 축제의 이름은 주사위(푸림)를 던져 선택된 날에 모든 유다인을 살해하라는 하만의 명령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그날은 유다인들을 증오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에게 운명의 날이 되었다.


말하고 행동하는 시간

에스테르기의 본질적인 핵심은 피비린내 나는 증오와 복수가 아니라 불의와 억압에 대한 항거이다. 이 이야기는 유다인들이 유배지에서 겪는 같은 운명을 다루고 있다. 유다인들은 유배지에서 주변 환경에 그대로 순응하고 적응하기보다는 율법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는데, 이런 모습이 주변 사람들에게 수상하게 보였다(에스 3,8 참조).

에스테르는 자기 백성을 살려달라고 청하기 위해 임금 앞에 나아가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거의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임금에게 들도록 부름을 받는 사람만이 임금에게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모르도카이는 에스테르의 마음에 이렇게 호소한다. “그대가 이런 때에 정녕 침묵을 지킨다면, 유다인들을 위한 해방과 구원은 다른 데서 일어날 것이오. 그러나 그대와 그대의 아버지 집안은 절멸하게 될 것이오. 누가 알겠소? 지금과 같은 때를 위하여 그대가 왕비 자리에까지 이르렀는지”(에스 4,14). 에스테르는 입을 다물고 침묵하며 왕비가 머무는 곳으로 피신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막중한 사명을 깨달았고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어 사건에 개입한다.

억압을 받고 박해를 겪는 소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항상 실존한다. 그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목숨까지도 내놓는다. 하지만 이들은 항상 소수인 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침묵을 통해 책임을 회피한다. ‘만일 그대가 이런 때에 나서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면, 유다인들을 위한 해방과 구원은 다른 데서 일어날 것’이라는 모르도카이의 경고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른 데’라는 모르도카이의 언급은 유다인들의 해석에 따르면 하느님 자신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장소’는 하느님을 특징짓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장소’, 그러니까 모든 곳에 현존하시는 분이다. 에스테르는 하느님의 도구이다. 그의 양아버지인 모르도카이의 절박한 호소는 에스테르로 하여금 자신에게 어떤 사명이 주어져 있는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행동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마음을 닫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낯선 이주민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대우와 배척과 증오심 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다섯 두루마리’에 속하는 또 다른 문헌인 코헬렛은 이렇게 말한다.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코헬 3,7). 따라서 입을 열어 말하고 행동할 때가 언제인가를 깨닫는 일이 우리에게 중요하다. 에스테르는 그 때를 제대로 깨닫고 행동한 여인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충실한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쌍백합, 제38호, 2012년 가을호, 김선태 사도요한 신부(화산동 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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