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구약성경과 신들21: 구약성경의 다양한 나무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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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7-06 | 조회수4,163 | 추천수2 | |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21) 구약성경의 다양한 나무들 참나무 · 향엽나무, 성소 알리는 표지 구약성경에 나오는 세 가지 나무인 참나무, 향엽나무, 돌무화과나무에 대해 살펴보자.
구약성경에서도 참나무와 향엽나무는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거룩한 나무다. 두 나무에 얽힌 고대 이스라엘인의 종교심도 비슷한 점이 많다. 참나무를 뜻하는 히브리어 '엘로온'과 향엽나무를 의미하는 '엘라'는 높다, 세다, 첫째 가다를 뜻하는 고대 셈어 어근에서 파생한 단어다. 이 나무들의 이름을 직역하면 '드높은 나무' 또는 '우두머리 나무' 정도 된다. 창세기 12장에서 스켐의 성소는 '모레의 참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참나무는 곧 성소를 알려 주는 표지다. "그리하여 스켐의 모든 지주와 벳 밀로의 온 주민이 모여, 스켐에 있는 기념 기둥 곁 참나무 아래로 가서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웠다"(판관 9,6). 모레의 참나무는 널리 알려진 지명으로 쓰였다. 마치 명동성당처럼 누구나 아는 명소를 안내의 기준으로 삼듯이 당시 참나무가 그 같은 역할을 했다. 참나무는 또 임금을 세우는 대관식이 열리는 곳이었다. 또 흥미롭게도 장례가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그때 레베카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 베텔 아래에 있는 참나무 밑에 묻혔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을 알론 바쿳(통곡의 참나무)이라 하였다"(창세 35,8). 거룩한 나무 - 참나무와 향엽나무 향엽나무도 참나무와 종교적 쓰임새가 비슷하다. 여호수아의 시대에 유서깊은 성소인 스켐에서 하느님과 백성이 새로 계약을 맺었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백성이 맺은 계약의 증거로 큰 돌에 모든 말씀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큰 돌을 가져다 '향엽나무 밑'에 세웠다.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모두 하느님의 율법서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그곳 주님의 성소에 있는 향엽나무 밑에 세웠다"(여호 24,26). 참나무가 장례 요소로 쓰인 것처럼 사울의 시신을 수습한 곳도 향엽나무 밑이었다. 향엽나무는 참나무처럼 장사 지내는 곳이었으며, 아울러 주님의 천사가 내려와 앉아 하느님 뜻을 전하는 거룩한 곳이었다. 고대 근동의 다양한 민족들도 이 나무들에 깃든 거룩한 의미를 공유했다. 이 나무들 아래에서 의례를 거행했고, 나무를 깎아 신상을 만들었다. 구약성경은 일부 이스라엘인들도 이방인의 풍습을 따라 이 나무들 아래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제의를 거행했음을 전한다. 또 이 나무들로 우상을 만들었다는 대목도 여러 차례 나온다. 신명기계 신학자들은 이스라엘이 고난받는 이유가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성찰했다. 그러면서 주님께 불충한 이유가 "참나무들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또 가까운 미래에 고난받을 이스라엘의 모습을 "시든 향엽나무처럼"이라고 말했다. 두 나무는 이스라엘의 죄와 고난을 표현하는 데에도 쓰인 것이다. "너희가 좋아하는 그 참나무들 때문에 너희는 정녕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가 선택한 그 정원들 때문에 너희는 창피를 당하리라. 너희는 정녕 잎이 시든 향엽나무처럼 되고 물이 없는 정원처럼 되리라"(이사 1,29-30). 두 나무에 대한 구약성경의 태도는 양면적이다. 거룩한 성소나 하느님의 현존과 연관됐을 때는 긍정적이지만 우상, 이방 신과 관련됐을 때는 단호하게 부정적이다. 이스라엘인은 두 나무에 대한 고유한 신학적 성찰을 발전시켰다. 이스라엘 민족이 겪을 역사적 고난과 수치가 이 나무들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난을 견디고 남을 미래도 역시 이 나무들의 그루터기로 상징됐다. 돌무화과나무 고대 이스라엘인은 고대 근동의 중요한 종교적 상징을 완전히 탈신화했다. '돌무화과나무'는 이집트에서는 '거룩한 나무'였지만, 구약성경에는 그저 '재산'이나 '목재'다. 특히 값이 싸고 부실하고 보잘것없는 의미로 쓰인다. "솔로몬 임금 덕분에 예루살렘에서는 은이 돌처럼 흔해졌고, 향백나무는 평원 지대의 돌무화과나무만큼이나 많아졌다"(1열왕 10,27; 2역대 1,15; 9,27). 아모스 예언자는 스스로를 촌뜨기라고 겸손하게 표현한다. 여기서도 이 나무는 아모스의 직업과 관련된 것일 뿐 특별한 종교적 심성을 찾아볼 수는 없다. 돌무화과나무나 가꾸는 사람은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아모 7,14). 그러나 이스라엘에 큰 영향을 끼친 이집트에서 돌무화과나무는 강한 신성을 지닌 나무였다. 멤피스인들이 섬기던 대중적인 하토르 여신의 표상이었고, 18왕조와 19왕조 시대에는 하늘의 여신 누트를 상징했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 이런 이웃 종교의 상징성은 구약성경에서 탈색됐다. 단 한 번도 성소나 의례와 연관되지 않았고, 우상 숭배와도 관련 없는 그저 값싼 나무일 뿐이다. 하지만 이집트 종교와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면 아래 구절에서 희미한 상징을 느낄 수 있다. 하느님이 이집트에서 일으키신 기적을 찬미하는 시편 78편은 이집트인들의 중요한 재산인 포도나무와 돌무화과나무가 못 쓰게 됐다는 점을 말한다. 돌무화과나무를 그냥 재산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집트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우박으로 저들의 포도나무를, 서리로 저들의 돌무화과나무를 죽이셨다"(시편 78,47). [평화신문, 2013년 7월 7일, 정리=이정훈 기자] ※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은 평화방송 TV 홈페이지(www.pbc.co.kr) 강좌/성경 꼭지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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