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마르코 복음서3: 사랑의 고리 -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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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7-06 | 조회수5,406 | 추천수1 | |
[윤일마 수녀의 신나는 성경공부 - 마르코와 함께 쓰는 나의 복음서] (3) 사랑의 고리 서로 구원의 길 밝혀주는 등불이 되자 - '중풍병자를 치유하는 예수 그리스도'. 지거쾨더 신부 작.
오늘 우리는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을 만난다(마르 2,1-12). 로마제국의 속국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이 주시는 참 평화와 행복 속에 사는 새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새 시대는 예수님이 선포하고 계신 하느님 나라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흠 없고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의롭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구원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구원받을 자격의 기준으로는 가장 먼저 죄와 허물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졌다. 죄와 허물은 나와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고 영원한 죽음, 곧 파멸의 길로 가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앞에서 사랑으로 죄를 용서받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병든 사람을 죄인으로 취급하는 관습이 있었다. 죄 때문에 하느님의 징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치병을 치유받았다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용서와 구원을 받았다는 징표였다.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이 따라다녔다. 악령이 들린 사람을 비롯해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이들이 많았다. 예수님이 카파르나움에 있는 어느 집에 머무르실 때 일이다. 군중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었다. 군중은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 말씀을 듣고 있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메마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가르쳐주셨다. 그런데 네 사람이 몸이 말라 비틀어진 중풍병자를 들것에 싣고 왔다. 중풍병자는 살아 있지만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마음도 굳어 있는 상태였다. 네 사람은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으로 중풍병자를 내려보냈다.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예수님이 아니시면 누구도 이 중풍병자를 구원할 수 없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집의 지붕은 간단히 걷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중풍병자를 데려온 네 명은 우리에게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준다. 성경에 나오는 넷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숫자이며, 동서남북 사방을 가리킨다. 이들이 중풍병자를 도와줌으로써 병자가 낫게 됐다. 이들의 믿음은 다른 사람을 주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불같은 것이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치유하시는 장면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많은 경우 병자를 들것에 실어 오거나 누군가가 업고 오는 등 이웃의 도움을 통해 예수께 왔다. 마르코복음서 5장에서는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께 와서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마태오복음서 8장에서는 백인대장이 병든 종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한다. 이 마음은 병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사랑의 마음이다.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은 주님을 감동시킨다. 네 사람은 치유와 은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여줬다. 예수님은 기적을 보여주셨고 "너의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말씀하셨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불신했다. 불신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도, 예수님의 구원도 통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한다. 불신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 앞에 벽을 쌓는 행위다. 이는 마치 누군가를 신뢰하고 믿으면 그의 모든 일에 협력할 수 있지만, 믿지 못하면 그 사람의 좋은 점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 가라"고 말씀하셨다.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은 큰 자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들의 권한을 갖고 용서해 주심으로써 하느님의 힘을 보여주셨다. 많은 사람이 하느님 권능을 목격했다. 중풍병자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구원을 향해 나아가도록 등불 역할을 해줘야 한다. 묵주반지를 낀 가톨릭 신자들을 보면 사람들은 그 사람은 이미 선을 베풀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을 감동시킨 네 명의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 중에도 그런 삶을 사시는 분이 계실 것이다. 우리 각자도 복음서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네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경제적으로 힘들 때, 병고에 시달리고 있을 때, 취직이 안 돼 힘들었을 때,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을 때, 갖가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나를 그 상황에서 구해준 사람은 누구인지, 1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현재까지 각 시기마다 도움을 준 아름다운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평화신문, 2013년 7월 7일, 정리=이지혜 기자] ※ 방송시간 : (화) 오전 8시, (수) 새벽 1시/오후 1시 40분, (금) 밤 8시, (토) 밤 10시 ※ 교재 문의 : grace@pauline.or.kr, 02-944-0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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