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풀이 FREE] 모압과 룻
- 사해 건너편 모압
이스라엘에서 사해 건너편으로 자리 잡은 모압은 소돔과 고모라 시대에 얽힌 롯의 딸들의 한 맺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천륜을 어기고 아버지와 동침하여 아들을 얻은 딸들의 말 못할 사연은 그저 상상 속에서 추측해 볼 뿐이다.
근친상간이라는 위험한 도박 속에 태어난 첫째 딸의 아들이 모압으로서, 히브리어 Moab의 의미는 from father(‘아버지에게서’)이다.
모압의 기원을 말해주는 창세 19장은 하느님의 천사들이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를 방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때 롯은 손님들을 능욕하려 몰려온 이웃들에게 딸들을 대신 내어 주려 했다.
성서 시대 여인들은 집안이 가난해지면 종으로 팔려가기도 하는 재산처럼 간주되었고, 고대 근동에서는 자기 지붕 밑에 거하는 손님들을 보호하는 것이 명예가 걸린 신성한 임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롯은 처녀 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손님들을 지키려 한 듯하다. 그러나 고대 문화의 특성을 한껏 고려한다 하더라도, 자기 명예를 위해 딸을 위험에 빠뜨린 롯의 행동에는 비정한 아비의 모습이 여과 없이 노출되었다. 그리고 재앙에서 살아남은 후 아버지를 취하게 하고 근친상간이라는 불명예를 안겨준 딸들에게는 아버지가 그토록 지키려 한 명예를 무너뜨림으로써 그녀들의 한 맺힌 아픔을 표출하는 듯도 하다. 유황불에 정혼한 신랑을 잃은 딸들이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각각 아들을 얻었고, 첫째 딸이 낳은 아들 모압은 나중에 목축하는 나라가 되었다(“모압 임금 메사는 목축을 하는 사람으로서……” 2열왕 3,4).
그러다가 판관기 시절 가나안에 심각한 기근이 들자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모압 땅으로 이사하였고, 그곳에서 남편 엘리멜렉과 아들들이 죽어 버렸다(룻 1,1-5). 혼자 살아남은 나오미는 모압인 며느리 오르파와 룻을 애틋이 생각하여 자기 인생을 개척하도록 떠나보내려 했다. 그러나 작별을 고한 오르파와 달리 룻은 시어머니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이스라엘로 따라와 하느님을 섬겼다(룻 1,14). “어머님 가시는 곳에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내가 가장 어려울 때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잃고 상심에 빠진 시어머니를 보듬어 고향까지 따라온 룻의 효행은 많은 여인의 표상이 되었고, 모든 이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예표하는 데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재앙 속에 모압을 낳은 롯의 첫째 딸의 기구한 사연이 다윗의 고조(룻 4,21-22)로서 나중에는 구세주의 계보(마태 1,1-17)까지 잇게 된 모압 여자 룻에게서 위로받고 승화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2013년 7월 21일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인천주보 4면, 김명숙 소피아(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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