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가라지
가라지는 마태복음 13장에 한번 등장한다. 어떤 사람이 좋은 씨를 뿌렸는데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렸다는 내용이다. 중국 성경은 가라지를 패자(稗子)라 했다. 패(稗)는 잡초인 피를 뜻하는 한자다. 영어 성경은 위드(weed)라 했다. 역시 잡초를 뜻한다. 성경의 무대인 팔레스티나에서는 주완(zuwan)이라 부른다. 밀밭 잡초를 뜻한다고 한다. 가라지는 밀이나 보리와 모양이 비슷하다. 성장기에는 농부들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추수 때가 되어야 비로소 눈에 띈다. 밀이나 보리보다 줄기가 가늘고 이삭도 훨씬 작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곡식에 섞이면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중동 지역에서는 지금도 일일이 이삭을 뽑아 제거하고 있다.
밀 이삭은 줄기 끝에 두 줄 또는 네 줄씩 낟알이 맺힌다. 보리 역시 여섯 줄씩 빽빽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가라지는 몇 알씩 드문드문 지그재그로 맺힌다. 그래서 ‘지네보리’라고도 불린다. 가라지의 씨는 이집트의 4,000년 된 무덤에서도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그만큼 오래된 식물이다. 열대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다.
성경에서 하인들은 이삭이 패어 식별할 수 있게 되자 가라지를 뽑겠다고 했다. 그런데 주인은 추수 때까지 두라고 한다. 가라지는 익어도 열매가 떨어지지 않기에 언제든 찾아낼 수 있다. 따라서 곡식에 피해를 주면서 굳이 뽑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대로 두었다가 추수 때 없애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달리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로마의 압제에 시달리던 유다인은 의인들만의 공동체를 건설하려 했다. 그래야 메시아가 빨리 온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죄인들을 제거해야 흠 없는 공동체가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반대 입장을 취하셨다. 죄인들과 어울리며 그들 편에 서신 것이다. 가라지의 비유는 예수님의 사상을 암시하는 비유라는 것이다.
가라지는 강아지풀과 다른 식물로 알려져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가라지는 강아지풀이 아니라는 견해다. 둘 다 볏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풀이지만 강아지풀은 강아지 꼬리 모양의 하늘거리는 꽃이 피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가라지는 위를 향해 비쭉 비쭉 솟는 꽃을 피운다. 하늘거리는 모습이 전혀 없다. 개신교에서는 독보리(毒麥)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2013년 9월 1일 연중 제22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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