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풀이 FREE] “물이 임을 만나 얼굴이 붉어졌네.”(포도주의 기적, 요한 2,1-12) 요즘 성지에 대한 열망이 높아서 먼 길을 마다 않고 이스라엘을 찾는 순례객들이 많다. 그리고 그 여정 중에 가장 즐거운 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카나의 혼인 잔치 성당에서 행하는 혼인 갱신이 아닐까 한다. 자녀들을 시집, 장가보낸 나이 드신 부부들이 오랜 결혼 생활을 돌아보고, 배우자에 대한 마음을 재확인하는 이 시간은 순례의 진미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배우자와 함께 오지 못한 이들의 염장(?)을 지르기도 하지만, 참 아름답고 은혜로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바쁘디 바쁜 요즘은 혼인이건 갱신이건 하루 만에 잔치를 끝내지만, 고대 이스라엘은 꼬박 이레 동안 치렀다. 하느님의 천지 창조를 기념하는 동시에, 새 가정을 꾸리는 것은 창조에 동참하는 과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곱과 레아(창세 29,28), 삼손(판관 14,10-20) 등이 일주일 동안 잔치를 했고, 요한 2,1-12에도 어떤 혼인 잔치가 등장한다. 신랑이 카나 출신 나타나엘이라는 전승도 있지만, 그렇건 아니건 예수님과 성모님, 제자들까지 초대 받은 것으로 보아 매우 친근한 사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에는 잔치가 길어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가 나오지만, 시간이 갈수록 질이 떨어지거나 동이 나는 경우가 있었다. 사실, 잔치 집에 술 떨어지는 것만큼 창피한 일이 어디 있었으랴.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신 성모님의 제안으로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어 곤란함을 도와주셨고, 포도주를 맛본 손님들은 ‘아직까지 좋은 술이 남아 있으니 왠일이오?’ 하고 감탄했다. 당시 정결례에 사용했던 물 항아리들은 두세 동이 들이(72~96리터 정도)로서, 우리가 성당에서 성수를 찍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결혼이나 성인식 등의 행사를 치를 때 손을 씻는 정결례를 거친다(비슷한 관습, 마르 7,3 :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 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웅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이런 항아리 여섯 개가 포도주로 가득 찼을 때는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혼인이란 하느님이 정하신 법칙으로서(창세 2,24), 세상을 채우고 번성하라는 축복(창세 1,28)을 완성시키는 큰 선물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혼인의 엄숙함과 그 섭리를 돕기 위해 포도주로 혼인의 기쁨을 넘치게 채워주셨다. 아무 색도 향도 없는 물이 예수님을 만나 향기로운 포도주로 변한 이 신비를 두고, 어떤 시인은 ‘물이 임을 만나 얼굴이 붉어졌네’라는 시를 남겼다 한다. 그리고 나의 삶 또한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감동을 잃고 무미 건조질 때마다, 창조주이신 임을 만나 그리스도의 향이 넘치는 도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2013년 9월 8일 연중 제23주일 인천주보 4면, 김명숙 소피아(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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