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까마귀 까마귀는 한배에 4~5개의 알을 낳는다. 암컷이 알을 품으면 수컷은 먹이를 날라다 먹인다. 멋진 새다. 잡식성으로 죽은 동물까지 먹는다. 이 특성 때문에 구약성경에서는 부정한 동물로 분류되었다. 레위기 11장 15절이다. 노아는 홍수가 끝났는지 보려고 까마귀를 보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이 설화도 부정한 새로 분류하는데 기여했다. 레위기 11장은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을 수 없는 짐승으로 구분했을 뿐이다. 까마귀 자체를 사악한 동물로 규정한 것은 아니다. 까마귀가 악한 짐승이었다면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음식 배달을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요르단 동쪽에 숨어 지내라. 내가 까마귀에게 명해서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하겠다.’(1열왕 17,4) 예수님께서도 까마귀 비유를 드셨다. ‘까마귀들을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씨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루카 12,24) 까마귀의 특징은 보스가 없고 각자 자유롭게 지낸다. 오합지졸(烏合之卒)이란 말은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독창적이고 영특한 새다. 병 속에 든 물을 마시기 위해 돌을 집어넣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영국에서 실험한 결과 실제로 밝혀졌다. 설화에 등장하는 까마귀는 모두 좋은 새였다. 견우직녀에게 오작교를 만들어 주는 것은 까마귀와 까치였다. 고구려 벽화에는 발이 셋 달린 까마귀(三足烏)가 등장한다. 태양 속에 산다는 전설의 까마귀로 고구려의 국조였다. 일본에서도 신령한 새였다. 까마귀를 신의 사자로 모시는 사당이 지금도 있다. 게르만족은 미래를 점지하는 새로 여겼다. 영국 황실에서는 길조로 선정해 사육하기도 했다. 근대로 오면서 불길한 새로 인식되었다. 죽은 동물을 먹는 새라는 점이 작용했다. 중세 베네딕토 성인은 까마귀와 인연이 있다. 그를 상징하는 문장(紋章)에는 깨진 컵과 까마귀가 그려져 있다. 한때 함께 살던 수도자들이 성인의 엄격한 규칙에 반대해 독살하려 했다. 빵과 포도주에 독을 넣은 것이다. 성인이 포도주잔에 십자가를 긋자 잔이 깨지고 빵을 먹으려 하자 까마귀가 낚아채 목숨을 구했다는 전설 때문이다. 잘 잊어버리는 사람에게 까마귀 고기 먹었느냐고 농담한다. 까마귀와는 무관한 말이다. 왜 까맣게 잊었느냐는 말에서 이런 표현이 나왔을 뿐이다. [2013년 10월 20일 연중 제29주일 · 전교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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