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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루카 복음사가의 매력: 위대한 이야기꾼 루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25 조회수3,691 추천수1

[루카 복음사가의 매력] 위대한 이야기꾼 루카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이 땅에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해온 파란 눈의 선교사가 루가복음의 진면목을 알려줍니다.


금년은 루카의 해이다. 연중 주일미사마다 우리는 루카 복음을 듣는다. 루카는 대단히 고마운 분이다. 복음사가 네 분 중에 루카가 우리에게 예수님을 가장 매력적으로 소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의 모습과 바오로 사도의 활동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어떤 구도자가 우리 종교에 관심을 두면 나는 우선 루카 복음을 한 번 쭉 읽어 보라고 권한다.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께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루카를 추천하는 객관적인 이유도 있지만 이 자리에서는 진 신부가 루카에게 개인적으로 느끼는 다양한 매력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 복음사가 루카, 성경 사본 세밀화, 디오니시오 수도원 소장


이번호에서는 루카의 문학 솜씨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복음사가 중에 그리스어 문장을 가장 세련되게 구사했던 이가 루카이다. 그는 팔레스티나 출신이 아니어서 어릴 때부터 그리스말을 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물론 원문을 한국말로 옮길 때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번역된 글이라 해도 그가 설화들을 얼마나 유능하게 짰는지를 음미할 수 있다.

사도 바오로는 루카를 “사랑받는 의사”(콜로 4,14)라고 했다. 그런데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루카는 화가였고 성모 마리아의 초상을 그렸다고 한다. 이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없다. 허나 루카가 글로 마리아의 모습을 그렸다고 말할 수는 있다. 우리가 신약성서 안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이야기들의 상당부분은 루카가 남긴 것들이다. 루카는 위대한 이야기꾼으로서 우리 상상력을 자극한다. 루카 복음 가운데 아름다운 장면이 많아 서양 미술사에서 그가 묘사한 장면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뺀다면 중세기 조형미술의 절반 이상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예수 탄생 예고, 마굿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와 성모, 성전에서 봉헌되는 예수, 성전에서 되찾은 예수, 잃어버린 아들을 받아주는 아버지, 십자가 길에서 예수를 위해 울던 여인들, 엠마오에서 제자들과 만남, 예수승천과 성령강림, 이 모든 것들이 루카가 화가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킨 멋진 주제들이다.

그리고 루카는 이야기를 짤 때에 짧은 한 마디로 극적인 비장(悲壯)함을 주었다. 그 예로 나인에서 과부의 죽은 외아들의 관에 손을 대신 예수(7,12), 바리사이들이 보는 가운데 예수의 발을 눈물로 씻고 머리카락으로 닦는 죄 많은 여인(7,28), 강도 당한 사람을 보살피는 사마리아인(10,33-35), 방탕한 생활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보고 달음질하며 맞으러 가는 아버지(15,20),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죄수와의 극적인 만남(23,40-43)을 들 수 있다.

이런 흥미로운 장면들은 사도행전에서도 계속 나온다. 베드로가 치유한 앉은뱅이가 성전에서 깡충깡충 뛰는 모습(사도 3,8), 바오로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뜻밖에 예수를 만나는 사건(사도 9,1-9), 천사가 베드로를 감방에서 석방함(사도 12,6-18), 로마 군대 천부장이 바오로를 광신적인 유대인들의 손에서 빼내는 장면(사도 22,22-25; 23,27), 한밤중에 필리피 감옥에서 찬양노래를 부르는 바오로와 실라(사도 16,22), 이런 드라마 같은 사건을 서술하여 루카는 계속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지루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모든 드라마 가운데 가장 극적인 내용은 바오로가 선교여행 중 파선을 당한 사건이다. 사도행전 27장에서 루카가 묘사한 항해와 파선, 그리고 바오로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는 고대문학 가운데 항해에 관한 제일 세밀한 보고라고 한다. 그 끝에 간신히 익사를 피한 바오로는 뱀에 물리지 않던가! 그러나 바오로가 아무 해도 입지 않자 사람들이 대단히 놀랐다고 한다(사도 28,3-6).

루카는 가끔 어떤 상황을 기술할 때 그 일의 그로테스크한(기괴함)면을 부각시켜 독자들의 웃음을 초래한다. 예수를 보기 위해 나무위로 올라간 세관장 자캐오가 그 예이다.(19,4) 베드로의 목소리를 듣고 너무 기뻐서 하녀가 문을 열지 않고 다시 안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동안에 베드로가 계속 문을 두드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누가 재미를 느끼지 않겠는가(사도 12,12-16)? 또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가 리스트라에서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으로 경배를 당하게 되는 모순적 해프닝(happening)을 보아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지 않는가(사도 14,11-18)! 에페소의 시위대가 여러 시간 구호를 외쳐도 대부분이 무엇 때문에 모여들었는지도 몰랐다고 보고한 루카 자신도 웃었을 것 같다(사도 19,32). 그리고 갈리오 총독 법정 앞에서 유대인들이 서로 때리는 장면을 참 우스꽝스럽게 보았을 것이다(사도 18,17). 그런 모든 이야기에서 우리는 루카의 해학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만사가 하나의 큰 드라마, 가끔 비극에 가까운 드라마로 보인다. 루카는 우리에게 그 드라마 속의 흥미로운 부분과 웃음을 일으키는 부분에 눈을 감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슬픔과 울음은 사라지고 기쁨과 웃음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도, 2013년 봄호(제21호), 글 진문도 토마스 신부(Thomas Timpte, 晋文道), 그림제공 성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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