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산책 구약] 코헬렛
코헬렛이 인생을 질문하다 몇 주 전에 보았던 욥과 코헬렛은 서로 대비되면서도 사실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누리던 복을 다 잃었을 때에 이 세상의 질서에 대해, 하느님의 정의에 대해 항변했습니다. 반면 코헬렛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누려 보았습니다. 코헬렛 역시 솔로몬을 저자로 내세우고 있는데 실제 저자가 솔로몬인 것은 아니지만, 이 저자는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업적을 이루었고 누구보다 뛰어난 지혜도 깨달았으며 많은 부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 1,2)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맙니다. 코헬렛이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애쓰고 수고한 사람에게 그대로 그 보람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있으면 어리석은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나마 죽으면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맙니다. 죽음, 이것이 코헬렛에게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었습니다. 잠언에서와 마찬가지로 코헬렛에게도 내세에 대한 희망은 아직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평생 무엇인가 이루려고 노력을 하고 또 실제로 무엇을 이룬다 해도 그것은 어느 순간 나에게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코헬렛은 인생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즐겁게 음식을 먹으며 즐기고,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젊었을 때는 젊음을 즐기라고 초대합니다. 그것이 덧없는 인생에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코헬렛은 이 즐거움이 영원한 가치, 최고의 가치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이 지상에서 인간에게 허락된 몫이라고 알기에 영원하지 않은 그 즐거움이 사라지기 전에 그 즐거움을 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욥기와 코헬렛은 비슷한 단계의 신학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지혜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잠언에서는 이 세상의 질서를 말했고 인간이 어느 정도는 그 질서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하고 있었지만, 코헬렛은 인간이 알 수 있는 영역보다는 알 수 없는 영역을 바라보며 인간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그리고 욥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코헬렛은, 인간 앞에 놓인 벽 앞에서 믿음을 선택합니다. 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코헬렛은 자신에게 알도록 허락된 그 영역 너머로 손을 내뻗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 위에 있으니”(코헬 5,1) 코헬렛은 인간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 그에게는 인생이 온통 고생처럼 보일지라도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코헬 3,11)고 믿습니다. 인간이 그 하느님의 계획을 깨달을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코헬렛은 그런 믿음으로 자신이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은 하느님께 맡기고 그분께서 주시는 작은 즐거움들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지상과 천상, 현세와 내세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의 믿음이 코헬렛의 믿음보다 더 가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코헬렛은 진정 겸허한 신앙인이었습니다. [2014년 5월 4일 부활 제3주일(생명주일) 서울주보 5면,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