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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3: 모세의 죽음과 오경의 주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15 조회수3,935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3) 모세의 죽음과 오경의 주제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느보 산에서 바라본 가나안 땅. 왼쪽 푸른 부분이 사해다.


추리 소설을 읽을 때, 앞에서는 알아보지 못했던 작은 사건들의 의미를 결말에 이르면 알아듣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이 의미있는 단서들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의 책들을 읽을 때에도 저는 그 방법을 즐겨 씁니다. 흔히 마지막 부분을 보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여러 요소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해석할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의 첫 부분이 모세오경, 토라, 율법입니다. 이 부분은 신명기 34장에서 모세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자연스러운 결말일 수도 있지만, 완결되지 않은 결말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는 당신께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고난을 보았고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가나안족이 사는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한다고 말씀하셨는데(탈출 3,7-8 참조), 모세는 그 땅으로 백성을 인도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G. 폰 라트(von Rad) 같은 학자들은 구약의 첫 부분이 신명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기로 끝나야 한다는 6경설을 주장했습니다. 그 땅을 목적지로 하여 출발했으니, 그 땅에 들어가 영토 정복과 영토 분배까지를 끝내고 열두 지파가 각각 자신의 땅을 받게 되는 것으로 줄거리가 완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4경설, 9경설 등 다른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 성경의 전통은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다섯 권을 토라 또는 모세의 율법이라 불러 왔습니다. 유다교에서는 제2경전을 포함하지 않는 히브리 성경을 토라, 예언서, 성문서로 나누어 왔고, 이러한 구분은 성경 자체 안에도 표시되어 있습니다(집회서 머리글 참조).

신명기 34장에서는 하느님께서 모세와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셨고 모세와 같은 예언자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여(신명 34,10 참조) 모세와 그 다음 세대를 뚜렷이 구별해 줍니다. 모세 이후의 모든 사람들은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여호수아기의 첫머리에서는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율법을 되새기라고 명하고 있어서(여호 1,7-8 참조)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율법을 가르친 모세 시대와 율법을 배우는 여호수아 시대를 구분짓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명기에서 큰 매듭이 지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인데, 그 다섯 권을 묶어 주는 주제는 무엇일까요? 신명기가 모세의 죽음으로 끝나니, 물론 모세는 이 책들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런데 그 모세는 어떤 인물로 이해해야 할까요?

계속 오경의 결말 부분에 머물러 봅시다. 모세는 기력이 다해서 안타깝게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하고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눈이 어둡지 않았고 기력도 없지 않았다”(신명 34,7)고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일찍 죽어 하느님의 계획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죽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종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곳 모압 땅에서 죽었다”(신명 34,5).

느보 산 위에서 하느님은 모세에게 “저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너의 후손에게 저 땅을 주겠다’고 맹세한 땅이다”(신명 34,4)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창세기와 신명기가 이어집니다. 아브라함은 땅의 약속을 받았고, 모세도 아직 그 실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약속은 오경이 계속되는 동안 내내 유효합니다. 땅의 정복이나 땅의 소유가 아니라 땅의 약속이 오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것입니다. 탈출기 3장 10절을 다시 꼼꼼히 읽어 보십시오. 하느님은 당신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데리고 올라가겠다고 말씀하시지만, 모세에게는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라고만 말씀하십니다.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모세의 몫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칼데아 우르에서 “가거라”(창세 12,1)라는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서 보여 주실 땅을 찾아 낯선 길을 떠났듯이, 모세의 역할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집트를 떠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자리잡고 살고 있어도, 그곳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이 있기를 바라신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그들의 삶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바라신 당신 백성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게 합니다. 이집트에서 먹던 고기를 그리워하는 나약한 이스라엘에게(민수 11,4 참조), 눈을 들어 주님께서 주실 땅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편안한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이 세상을 따라 살지 않고,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게 하는 것(히브 11,13 참조), 그것이 모세가 한 일이었고 오경이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약속의 땅을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올 때까지(묵시 22,2 참조), 우리는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모습 이대로의 세상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오경은 우리를 위한 책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필리 3,20).

[평화신문, 2014년 12월 14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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