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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역사서 해설과 묵상: 예후의 혁명과 바알 숭배 척결(2열왕 9-10장)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26 조회수3,211 추천수1

역사서 해설과 묵상 (124)


“이렇게 하여 예후는 이스라엘에서 바알을 없애버렸다.”(2열왕 10,28)

 

 

기원전 841년 예후가 혁명을 일으켜 아합 가문의 남자를 모두 죽이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정권을 장악했다. 열왕기 하권 9-10장은 예후의 혁명과 바알 숭배 척결을 전하는 내용이다. 이는 열왕기 상권 21장에서 엘리야 예언자를 통해 내린 말씀의 실현이다. “나 이제 너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나는 네 후손들을 쓸어버리고, 아합에게 딸린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이스라엘에서 잘라버리겠다”(1열왕 21,21). 

 

예후가 엘리사 예언자의 후원을 등에 업고 혁명을 일으켜 바알 숭배를 척결해 칭찬을 받았지만, 이스라엘 임금 요람과 유다 임금 아하즈야를 죽이고 두 가문의 왕자들을 비롯한 남자를 모두 학살한 것은 문제로 남는다. 같은 하느님을 섬기면서 그 하느님의 이름으로 학살을 자행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적도에 있는 나라 르완다는 인구 800만의 작은 나라다. 1990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르완다를 방문해 이렇게 칭찬하셨다. “르완다는 아프리카 선교 백 년 동안 가장 훌륭한 결실을 보인 곳이다.” 사실 르완다는 국민의 60%가 가톨릭 신자고, 20%가 개신교인 그리스도교 국가다. 그러나 교황님이 방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전이 시작돼 1994년 4월 대학살이 일어났다. 이 대학살로 50만 명이 살해되었고, 280만 명이 이웃나라로 피란을 갔다. 

 

이 내전은 부족들 사이에 벌어진 싸움이었다. 르완다는 벨기에의 식민통치를 받는 동안 부족 사이에 분쟁의 소지가 싹 텄다. 벨기에가 소수 부족인 투치족을 적극 등용하고 그들을 앞세워 다수 부족인 후투족을 지배하게 했기 때문이다. 1962년 독립하자 투치족과 후투족의 갈등과 반목이 커져, 1994년 결국 끔찍한 내전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가톨릭신자들이 상대방 부족의 주교와 신부들을 마구 학살한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80%나 되는 나라에서 마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서로 처참하게 쳐 죽이는 짓을 했던 것이다. 그러고도 복음화율 80%를 자랑할 수 있겠는가? 교황님의 칭찬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복음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복음대로 살지 못하는 이러한 문제점은 르완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천주교회는 지금까지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고 주요개념들을 설명해 세례를 주었을 뿐, 실제로 하느님과 함께 살고 복음적인 삶을 사는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믿는 신자답게 사는 것보다는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세례 받은 뒤에, 가급적이면 많은 신자를 교회의 단체 특히 레지오에 가입하도록 권고했다. 따라서 신자가 되는 것을 교회 어느 단체의 일원이 되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교회 단체에 가입하는 것도 본인의 뜻이나 재능과는 관계없이 주변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가입하므로 단체에 피동적으로 참여하며, 단체가 추구하는 카리스마보다는 친목도모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2차 주회’라는 말이 나오고, “주일미사는 안 가도 레지오 주회는 간다.”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레지오를 비롯한 교회의 단체에 가입한 신자는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 못한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고, 더구나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믿는 신자답게 사는 것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문제는 교회가 단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도 사람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하느님의 교회가 사람의 마음대로 되거나 인간의 얄팍한 재주로 될 수는 없다. 하느님의 뜻에 따른 공동체, 하느님의 사랑이 있는 공동체를 이루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교회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살기는 힘들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그 하느님의 말씀을 이 세상 안에서 살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묵상주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믿는 하느님은 고맙게도 존재하지 않는다”(칼 라너). 

 

[2015년 1월 18일 연중 제2주일(일치 주간)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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