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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시편기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10 조회수4,785 추천수1

[성경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시편기도



이러한 전통이 구약에 나옵니까?

그렇습니다. 이사야는 어느 날 기도하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갑니다. 그가 성전 안으로 들어가 고개를 들자마자 눈앞에 엄청난 광경이 펼쳐집니다. 성전 안에서 이사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실로 두렵고도 떨리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게 되는 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가 한 체험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는 소명체험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예언자 소명체험’을 이렇게 적습니다.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이사 6,1-3)

천상의 존재들조차 하느님 앞에서 외칠 수 있었던 최고의 외침은 이와 같이 ‘영원하신 분의 거룩하심’을 되풀이하여 노래하는 것이었습니다(묵시 4,8 참조).


시편과 성무일도의 관계는?

아주 긴밀합니다. 성무일도가 시편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들 곁에는 늘 성무일도가 있는데 이 책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이 시편입니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부터 많은 평신도분들이 성무일도로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시편 저자는 누구입니까?

시편 머리글에 ‘다윗’이 73번에 걸쳐서 등장합니다. 이런 현상은 다윗 임금을 시편의 창시자요 원조로 생각하는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머리글’은 본디 애초부터 시편에 붙어 내려온 것이 아니라 후대에 어느 시점에서부터 시편 본문에 첨가되어 내려온 것입니다.


다윗이 실제로 지은 시편은?

수많은 시편이 다윗이름으로 전승되어온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150편의 시편 가운데 원초에 다윗 임금이 어느 어느 시편을 지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실제로 모세가 그 저자가 아님에도, 창세기부터 신명기에 이르기까지 모세오경이 모두 모세의 이름으로 전승되어 오는 것과 같습니다.


특정한 저자를 댈 수 있는 시편이 있습니까?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어느 누가 어느 시편을 직접 지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시편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봅니다. 오히려 다음처럼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이러 이러한 시편을 읊었을까요?’ 라고>


시편을 지은 사람들의 부류를 꼽는다면?

크게 셋으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경우는 곤경에 처한 일반 민중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곤경에 빠진 어떤 이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와서, 탄원시편을 직접 읊어 하느님께 기도 올리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가 가져온 곤경이 탄원기도를 통하여 해결되었을 때, 그는 곧바로 감사의 시편을 하느님께 읊어드렸을 것입니다. 그때 그는 그 감사의 시편을 기록해서 성전에 봉헌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시편 유형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오는 시편이 탄원시편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개인이 드리는 ‘개인탄원시편’(3; 4; 59; 61; 140; 141; 142; 143 등) 기도가 있고, 집단이 드리는 ‘공동탄원시편’(44; 80편)도 있습니다. 감사시편도 ‘개인감사시편’(30; 32; 92편 등)과 ‘공동감사시편’(124; 129 편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문화에 비추어볼 때 감사시편에서 좀 특이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감사 시편 안에서 ‘감사하다’는 용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본디 히브리말에는 ‘감사하다’는 명확한 표현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인들은 그냥 지나간 일들을 고마운 마음으로 되새기는 가운데 감사함을 표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곤경에 처한 이가 주님께 탄원기도를 드렸을 때 그분께서 자신의 간청을 들어주시어 어려움에서 구원해주셨다고 다음과 같이 아룀으로써 고마운 마음을 표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이와 같이 해주셨습니다.’

시편을 지은 두 번째 부류로 성전봉사자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이들 가운데 사제들, 노래와 음악을 담당하는 이들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시편을 지어 노래하거나 물려받은 시편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가운데 필요한 이들에게 시편을 기도에 이용하도록 빌려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시편을 지은 세 번째 부류로 이스라엘 임금들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전례는 거의 임금 중심으로 거행되었으므로 많은 시편이 다윗 임금을 비롯하여 솔로몬(참조: 72; 127편)과 후대 임금들에 의해 지어졌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편은 언제 지어졌는지요?

각 시편의 저작 시기를 정확하게 알아낼 방도는 없지만 저작시기를 추론해 볼 수는 있습니다. 첫째로 가나안에 정착하면서부터 주요 성소들에서 거행하는 하느님 경배를 중심으로 지어진 시편들, 곧 경신례 때 읊어진 시편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다윗이 임금으로 즉위하면서부터 예루살렘 중심으로 시편이 창작되고 편집되었으리라 봅니다. 다윗임금이 기초를 놓고 솔로몬임금 때 우뚝 세워진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전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전례 거행 때 읊어지는 시편은 아주 거창했다고 봅니다.

또한 시편 저술 시기를 크게 바빌론 유배이전에 지어진 것과 유배이후에 지어진 것 등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 침입으로 인해 기원전 587년 여름에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합니다. 성전멸망 때 수많은 시편이 불타거나 없어져 버립니다. 바빌론 유배지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여 축성하는 기원전 515년경부터 성전 전례가 다시 시작되고 시편창작이나 수집과 편집 작업이 재개됩니다.

또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바가 있습니다. 한번 창작된 시편이 영구불변의 글로서 늘 꼭 같은 모습으로 고정되어 내려오지 않고, 때로는 살아있는 기도로서 상황에 걸맞게 조금씩 변화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시편은 고여 있는 웅덩이 물이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며 내려오는 생수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2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작전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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