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십자가의 길 기도 십자가의 길(Via Crucis) 기도는 고통의 길(Via Dolorosa) 기도라고도 한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사순시기 금요일 합동으로 바친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돌무덤에 묻히셨다. 초대교회는 박해를 거치면서 무덤 위치를 잊어버린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박해를 끝내자 무덤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황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는 적극적으로 무덤을 찾았고 결국 찾아냈다. 지금의 예루살렘 무덤성당이다. 무덤성당이 세워지자 사람들이 찾아와 기도하기 시작했다. 중세 때는 순례의 중심지였다. 주님의 부활 또한 그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루살렘 방문은 쉽지 않았다. 교통편이 열악했고 경비 또한 엄청났다. 회교도가 장악한 이후는 위험부담도 커졌다. 이렇게 되자 무덤성당을 본뜬 성당이 유럽 도시에 지어졌다. 조각과 그림으로 수난과 관련된 장소도 표시되었다.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더라도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할 수 있는 성당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농부들에겐 도시방문도 힘들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수도회 성당에 수난과 관련된 주요 지점을 표시해 기도하도록 한 것이다.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대개 14처였다고 한다. 1688년 교황 인노첸시오 11세는 수도회 성당에 만들어진 십자가의 길을 인정했고 기도하는 이들에게는 전대사(全大赦)를 허락했다. 1731년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지금처럼 14처로 고정시켰다. 이스라엘의 사형은 원래 투석형(投石刑)이었다. 돌을 던져 죽이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로마법에 따른 조치였다. 십자가형을 선고받으면 먼저 엄청난 매질과 고문을 당했다. 쓸데없는 반항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 뒤 십자 나무를 메고 처형장소까지 가게 했다. 기다리고 있던 집행관들은 쇠못을 팔목과 발목에 사정없이 박았다.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나뭇조각을 대고 박았다. 시체는 십자가에 달아뒀다. 날짐승이 먹거나 흉한 상태로 없어지게 했던 것이다. 십자가형은 무서운 전시효과를 남겼다. 모든 십자가에는 죄명 패를 달게 했다. 유죄 선고문이었다. 예수님의 선고문은 히브리 말과 라틴 말과 그리스 말로 씌어 있었다(요한 19,20).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죄수들도 죄명 패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십자가 나무는 대부분 올리브 나무였다. 로마는 337년 제국 내에서 십자가형을 폐지시켰다. [2015년 3월 29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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