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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16: 주님께서는 판관들을 세우시어(판관 2,16)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07 조회수3,529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16) “주님께서는 판관들을 세우시어”(판관 2,16)


반복되는 배반, 끊임없는 용서와 구원



-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잊고 숭배한 거짓 신 중의 하나인 ‘바알’ 신상.


위기의 이스라엘 구원 위해 판관 보내모세는 신명기에서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율법을 지키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그 유언에 충실하면 영토를 정복할 수 있었고 충실하지 않으면 전쟁에 패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수아도 죽습니다. 한 세대가 이렇게 지나갑니다. 이제 태어난 이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업적도 알지 못하는” 세대입니다(판관 2,10). 그 세대를 가리켜 이렇게 부르는 것을 보면, 이미 그 안에 역사가의 평가가 눈에 띕니다.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모세의 가르침에서 더 멀리 있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판관기는 여호수아 이후 아직 왕정이 설립되지 않았던 시대의 이스라엘을 보여 줍니다. 이 시대의 역사는 판관 2,11-19에 요약되어 있는데, 같은 상황이 판관 시대 내내 계속 반복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먼저,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는 다른 신들을 따라갑니다. 단골손님이 바알과 아스타롯입니다. “저희 조상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판관 2,12)을 알지 못하니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을 따라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신명기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인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고 그분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에서 멀어집니다.

이때 질투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따라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십니다. 신명기에서 하느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이 배타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신명기에서의 계약에 따라,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따라갈 때에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미디안이나 필리스티아 같은 다른 민족들의 손에 내맡기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부르짖습니다. 외적의 침략으로 시달리다가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어 판관을 세워 주십니다. 판관은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스라엘은 다른 신들을 찾아가고, 역사가 다시 반복됩니다.

판관기에서도 변함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라는 가르침입니다. 판관기에서 이스라엘의 죄는 무엇보다도 우상 숭배, 다른 신들을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불의나 폭력보다도 우상 숭배가 큰 죄로 여겨지는 것은 그것이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섬기라는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위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느님께 충실치 않았고 그래서 계속 다른 민족들에게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 충실했는지 여부에 따라 역사가 결정됩니다. 이집트 탈출과 영토 정복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구원을 체험하고도 다시 하느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간 것이 이스라엘이었고, 그래서 역사는 반복되었습니다.

판관들이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오직 그 한 분이신 하느님께 충실할 때입니다. 판관이라는 인물들은 일시적으로 이스라엘을 지도한 사람들이고 그 직무도 세습되지 않아서, 임금과는 다릅니다. 왕정이 설립되기 이전의 과도기적 통치 체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일시적인 제도였지만, 그들은 위기에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이들로서 이스라엘을 올바로 인도했습니다. 신명기계 역사서에서 임금들에 대한 평가가 대부분 부정적이었던 것과 달리 판관들은 모두 하느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판관들은 개인적으로 훌륭한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은 판관으로 부르심을 받을 때에 스스로 자신이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라고 말하고, 입타는 창녀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다른 아들들에게 쫓겨난 사람이었습니다. 삼손도 별로 존경할 만한 인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가문이나 신분과 관계없이, 필요한 때에 하느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이었습니다.

판관들의 군사 활동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군사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주님께 충실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었습니다. 가장 뚜렷한 예가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족을 치러 갈 때, 처음에 군사가 3만 2000명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가운데 대부분을 돌아가게 하시고 300명만을 남기십니다. “네가 거느린 군사들이 너무 많아, 내가 미디안을 너희 손에 넘겨줄 수가 없다. 이스라엘이 나를 제쳐 놓고, ‘내 손으로 승리하였다’ 하고 자랑할까 염려된다”(판관 7,2). 판관들은 그들 자신의 힘이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위험에서 구했습니다. 전쟁의 승리가 인간적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순종하는 데에 달려 있다는 것,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 신명기의 가르침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이 외적의 손에서 벗어나고 나면 어느새 다시 하느님을 잊어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판관기는 그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안정된 결말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판관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이 책에는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배반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럴 때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일깨워 주시고 판관들을 보내시어 바른길로 되돌아오게 하셨다는 것은 희망의 근거가 됩니다. 호세아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호세 11,2)라고 말씀하십니다. 틈만 나면 하느님을 떠나가는 이스라엘, 그러나 멀어져 가는 이스라엘에게 되풀이하여 손을 내미시는 하느님. 판관들은 그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었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4월 5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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