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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이스라엘 이야기: 광야의 목자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28 조회수3,836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광야의 목자


양 · 염소 많은 지리적 환경… 구약시대부터 등장



베들레헴 근처, ‘목자들의 들판 성당’.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예수님 탄생 소식을 전해 주었다는 루카 2,8-14 말씀을 기념한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들어왔다(탈출 3,8). 곧, ‘젖’을 제공하는 ‘가축’과 ‘꿀’처럼 달콤한 ‘열매’로 풍부한 옥토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젖과 꿀은 커녕 돌만 굴러다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스라엘 영토의 절반은 광야다. 비옥한 땅은 북쪽 갈릴래아 지방으로 올라가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칭송한 까닭은 주변 나라들에 비해 풍요롭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탄생지 베들레헴도 유다 광야로 둘러싸여 있다. ‘베들레헴’은 히브리어로 ‘베잇 레헴’인데, ‘베잇’은 ‘고장’이고, ‘레헴’은 ‘빵’을 뜻한다. ‘생명의 빵’(요한 6,35)이신 예수님이 ‘빵의 고장’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러나 고대 히브리어와 아랍어에 기초하면, ‘베잇 레헴’은 ‘고기의 동네’다. 곧, 고기의 고장이라 불릴 정도로 양과 염소들이 많았다. 그래서 착한 목자 예수님이 양들의 동네에서 태어나셨다는 것도 무척 상징적이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었으며(1사무 17,12-15 루카 2,4), 그 또한 그곳에서 양 치는 목자로 살았다. 지금은 베들레헴 근처 유다 광야에 베두인 목자들이 산다. 곧, 이들이 어린 시절 다윗의 모습을 떠올려 준다. ‘베두’라는 말은 ‘사막 사람’이라는 뜻으로, 양과 염소를 키우는 유목민들을 가리킨다. 염소 털과 판자로 얼기 설기 집을 지은 베두인 촌락을 보면, 반유목 생활을 했던 아브라함이나 이사악, 야곱이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 싶다.

혹자는, 목동들이 왜 풀도 별로 없는 광야에서 고생하는지 의아해한다. 하지만, 예부터 이스라엘에는 농부와 목자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농부가 열심히 경작해 놓았는데 가축이 밟거나 먹어버리면, 미움의 화살이 목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예레 12,10 참조). 그래서 목자들은 인적 드문 광야로 유목지를 옮겼고, 기름진 땅에서는 농부들이 경작을 했다. 광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드바르’도 ‘풀 뜯는 곳’을 뜻한다. 게다가 우기에는 광야에도 풀이 돋아나기에, 풍요롭지는 않아도 방목이 가능하다. 그러니, 베들레헴 주변에서 주님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이들이 목자들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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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두인 목동과 유다 광야에서 풀 뜯는 양들.


성경에 목자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양들을 볼 때마다 야릇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도 생각해 본다. 양들은 겁이 많고 소심해서, 무리 지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 경계도, 울타리도 없는 광야에서는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고, 야생 짐승들도 산다. 그래서 목자가 없으면 양들은 생존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고대 근동 임금들은 목자에 비유되곤 했다. 이집트는 ‘살아있는 호루스’인 파라오를 목자로 찬양했다. 바빌론에는 ‘임금 없는 민족은 목자 없는 양떼와 같다’라는 속담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목자들이 모두 선한 것은 아니었다. 고대 유다 법전 ‘미쉬나’에는, 고용된 목동들에게서는 양털이나 젖을 구입하지 말라는 규정이 나올 정도다. 주인 허락 없이 양떼를 착취할 가능성 때문인데, 광야에 혼자 떨어진 경우에만 생존 차원으로 예외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삯꾼들은 보수에만 관심이 있어서, 위험이 닥치면 양들을 버리고 도망간다(요한 10,12-13). 그래서 구약성경은 불성실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악한 목자’에 비유하여 꾸짖었다(예레 23,1-8 에제 34,1-10 등). 하느님 백성을 대신 맡아 인도하면서도, 주인 허락 없이 양들의 등골을 빼고, 양들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좋은 목자’ 하느님을 이들과 대조시켰으며(이사 40,11 에제 34,11-16 등), 회복의 시대에 다윗 후손이 목자로 세워질 것을 약속한다(에제 34,23-24 37,24). 실제로도 어린 시절 목동이었던 다윗은, 이상적인 목자의 심상을 쉽게 불러일으킨다. 이 전통이 나중에 신약의 예수님에게로 이어지게 됐으며, 참다운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요한 10,14-15).

지금도 광야에서 드문드문 풀 뜯는 양떼를 보면,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시편 23,1) 노래했던 다윗의 찬송이 떠오른다. 그도 자기에게 의지하는 양들을 키워 보았기에 이런 시편을 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짐승이건 사람이건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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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소피아)씨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4월 26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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