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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이스라엘 이야기: 시온 산 이층 방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25 조회수4,986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시온 산 이층 방


‘최후 만찬’ 나눈 장소서 사도들은 성령을 받고…

 

 

최후의 만찬 경당의 모습. 성령 강림 경당은 바로 옆에 있다. 사진 중간으로 보이는 조그만 창 안이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장소다. 오른쪽 끝의 초록색 문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폐쇄되었다. 성목요일과 오순절에만 개방된다.


예루살렘 성 바깥으로 남서쪽에는 시온 산이 있다. 그 정상에는 ‘최후의 만찬’과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이층 방, ‘다윗 임금의 가묘’ 등이 있다. 고대에는 예루살렘 안에 포함된 곳이었으나(파스카 만찬을 준비하려고 제자들이 도성 안으로 가는 마르 14,13.15을 참조), 16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슐레이만 대제가 예루살렘 성을 다시 지으면서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이스라엘 땅은 한때 오스만 투르크, 곧 예전 터키의 식민지였다).

시온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찌욘’이다. 정확한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메마른’(이사 53,2) 뜻을 가진 ‘찌야’와 같은 어근으로 본다. 예루살렘은 고도가 높아 나무들이 좀 자라지만, 올리브 산만 넘어가도 광야다. 어쩌면 그래서 ‘메마르다’라는 어원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또는 ‘방어하다’라는 의미의 ‘짜나’로도 추정한다. 시편의(125,2) 묘사처럼, 산으로 감싸인 고대 예루살렘은 천연 요새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시온 산으로 불리는 곳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시온 산과 동일하지는 않다. 시온 산은 본디 다윗 성과(2사무 5,7 1열왕 8,1)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한 모리야 산을 가리켰다(시편 78,68-69). 곧, 본래 시온 산은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다윗 성 위치가 잊혀져, 비잔틴 로마 시대부터 잘못된 장소로 오인해왔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는 옳지 않은 이름이나, 지금도 여전히 시온 산이라 불린다.

기둥머리에 새겨진 펠리칸.


바로 이 후대의 시온 산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파스카 만찬을 나누신 ‘큰 이층 방’(루카 22,12)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전승이 맞다면, 이 시온 산에서 성찬의 전례가 유래한 셈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세족례 장소도 된다(요한 13,1-15). 게다가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도 이 이층 방에 자주 모였던 것 같다. 제비를 뽑아 유다 이스카리옷을 대신할 사도 마티아를 선택한 곳도 이층 방이었다(사도 1,13.15-36). 그래서일까, 이층 방 아래 마당에는 ‘유다 이스카리옷’ 나무가 몇 그루 자란다. 전승적으로 유다가 목을 맸다고 알려진 동종의 나무다.

오순절에는 사도들이 이 이층 방에 모여 있을 때, 성령 강림이 있었다(사도 2,1-13). 오순(五旬)절은 구약성경에 주간절로 나오는 절기다. 파스카 축제부터 한 주가 일곱 번 지난 사십구 일 뒤, 곧 오십 일째에 지내므로(레위 23,15-16 신명 16,9 참조), 주간절 또는 오순절이라 불렸다. 구약성경에는 주간절을 역사적으로 풀이해 주는 설명이 따로 없지만(신명 16,12만 이스라엘이 이집트 종이었음을 기억하는 명절이라고 기록했다). 제2성전기 이후부터 모세가 토라, 곧 모세오경을 받아온 사건을 기념한다는 전승이 생겼다. 그러므로 주간절에 모세가 토라를 받은 것처럼, 신약 시대에는 사도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상징성을 띤다. 이때 사도들은 다양한 언어로 말씀을 선포하여, 요엘의 신탁을(3,1-2) 실현했다. 그래서 이 이층 방은 현재 두 개로 나뉘어, ‘최후의 만찬 경당’과 ‘성령 강림 경당’으로 각각 불린다.

시온 산 전경.(사진 중간에 가장 높은 종탑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건물 자체로만 보면, 이 이층 방은 서기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아래 층은 다윗 임금의 가묘다. 다윗은 원래 다윗 성에 묻혔으나(1열왕 2,10), 장소를 오인해온 까닭에 이곳으로 가묘가 마련되었다. 모두 작은형제회 수도원에서 관리하던 성지였지만, 오스만 투르크 모슬렘들에게 빼앗긴 뒤 이층 방은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메카의 방향을 표시해 주는 미흐랍이 붙어 있다. 모슬렘들은, 벽화나 이콘 등 장식 없이 단순하게 지어진 성당의 경우 사원으로 개조해서 사용하곤 했다(주님 승천 경당도 같은 역사를 겪는다). 그럼에도 성체 성사가 세워진 장소답게, 이 방 기둥에는 펠리칸 문양이 남아 있다. 기근이 들면 자신의 살과 피로 새끼를 먹인다는 펠리칸은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상징 가운데 하나다. 성가 ‘자애로운 예수’ 2절도 예수님을 펠리칸에 비유한다. 안타깝게도 1948년에는 이 경당이 이스라엘 정부로 넘어갔으며, 다윗 가묘를 중심으로 탈무드 학교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성찬의 전례가 확립되고 성령께서 임하셨다는 이 이층 방은, 우리에게 구원을 마련해 준 진정한 시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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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소피아)씨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5월 24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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