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도시] (51) 아시리아
이스라엘 왕국 멸망시킨 제국의 수도
- 아시리아 티글랏 3세와 수행원을 그린 아시리아 왕궁 벽화 사본. 기원전 8세기 것으로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출처=「성경 역사 지도」, 분도출판사
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서 일어난 아시리아 제국의 첫 번째 수도다. 초기에 ‘아시리아’라는 말은 티그리스 강 상류 지역을 부르는 말이었다. 나중에 아시리아는 바빌론처럼 나라의 이름이자 동시에 도시 이름으로, 그리고 사람 이름으로 자유롭게 사용되기도 했다.
이곳은 지금의 이라크 모술 지역에서 티그리스 강을 따라 남쪽으로 약 100㎞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아시리아인은 오랫동안 바빌로니아 세력 밑에서 지배를 받았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7세기에 바빌론과 이집트를 정복해 근동 최초의 통일 제국이 됐다.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는 아시리아는 티그리스 강변의 지정학으로 아주 좋은 위치에 있다. 아시리아인들은 북쪽과 동쪽은 강이 자연적인 방어를 해주고 있어 남쪽과 서쪽에 방어벽을 구축해 도시를 방어했다.
그러나 그들의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시리아는 점령지 주민의 강제 이주 등 가혹한 통치를 강행해 저항을 많이 받았다. 기원전 612년에 메디아와 바빌론 연합군이 수도 니네베를 함락하였고, 이어 기원전 609년 아시리아는 완전히 멸망하였다.
오늘날 이라크 내에 있는 성경 속 도시들은 거의 구약 시대와 관련이 있다. 그중에서도 아시리아는 바빌론 다음으로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중요한 도시다. 창세기에 보면 에덴 동산에 대한 이야기에 아시리아를 흐르는 강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 아시리아 동쪽으로 흘렀다. 그리고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창세 2,14).
기원전 922년 솔로몬 왕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이 통치하는 남쪽의 유다 왕국과 여로보암이 통치하는 북쪽의 이스라엘로 분열됐다. 남쪽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로 구성되었고, 북쪽은 나머지 열 지파로 구성되었다. 기원전 931년에 시작된 이 분열 왕국은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망하고, 유다 왕국이 이스라엘보다 나중인 기원전 586년에 바빌론에 멸망했다.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초대 왕인 여로보암 1세부터 호세아 왕까지 모두 19명의 왕이 다스렸다. 19대 호세아 왕 때 아시리아 왕인 사르곤의 침공을 받아 사마리아가 함락됐다. 그리고 사마리아 주민들은 아시리아로 끌려갔고 사르곤은 다른 지방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다.
사마리아로 옮겨온 이방인들은 정착해 원주민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동화됐다. “아시리아 임금은 바빌론과 쿠타와 아와와 하맛과 스파르와임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성읍들에 살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성읍들에서 살았다”(2열왕 17,24).
그런데 이방인들이 이주해 올 때 이교 신앙도 함께 가지고 왔기에 사마리아에는 혼합 종교가 생겼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에 유다 사람들이 사마리아인을 경멸했던 것이다. 그리고 남쪽 유다의 요시아 왕은 아시리아를 도우려는 이집트군과 전투를 위해 출병했다가 전사했다. “요시야 시대에 이집트 임금 파라오 느코가 아시리아 임금을 도우려고 유프라테스 강을 향하여 올라갔다. 요시야 임금이 그와 맞서 싸우러 나가자, 파라오 느코는 므기또에서 요시야를 보고 그를 죽여 버렸다”(2열왕 23,29).
바빌론 제국에 앞서 당대에 메소포타미아와 그 주위의 세계를 지배하며 호령했던 아시리아 제국이지만, 오늘날 그 모든 영광은 사라지고 그 화려한 유적마저 많이 도굴당했다. 그 흔적과 기록마저도 보존이 잘 안 돼 있어 권력 무상을 느끼게 한다.
[평화신문, 2015년 7월 5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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