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문화와 영성 (7) 세례자 요한의 죽음
요한은 메시아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를 베푼 예언자였다. 요한은 메시아의 선구자로서의 사명에 충실하였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있었고 그의 선포와 세례가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지만 그는 결코 자신을 메시아로 주장하지 않고 오실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일에만 충실하였다. 세례자 요한은 그의 운명, 즉 죽임을 당하는 최후를 통해서도 메시아의 선구자였다. 이러한 요한의 운명은 결국 예수님의 운명을 선취한다.
■ 카라바조의 <세례자 요한의 참수>
○ 카라바조의 <세례자 요한의 참수>(The Beheading of Saint John the Baptist)는 1608년 캔버스에 그린 유화로 361×520cm이며 말타(Malta)에 있는 발레타(La Valletta)의 현재 박물관이 된 성 요한 대성당(Cathedral of St. John)의 기도실(Oratorium)에 있다.
○ 카라바조는 감옥의 안뜰을 배경으로 목이 잘린 채 땅바닥에 엎드려 죽어가고 있는 세례자 요한을 그림의 중앙에 배치한다. 그림의 왼쪽에는 사형 집행자, 관리, 늙은 여종,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Salome) 등의 등장인물들이 있고 그림의 오른쪽에는 두 명의 죄수가 창살 너머로 이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 세례자 요한의 두 손은 결박되어 있다. 사형 집행자는 요한의 머리채를 잡고 단검을 뽑아들고 있다. 옆의 관리는 오른손으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가 놓일 금색의 쟁반을 가리킨다. 늙은 여종은 슬픔과 놀라움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살로메는 쟁반을 들고 있다.
○ 이 그림에서 특이하게도 카라바조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 아래 부분에 자신의 서명(f. michel)을 남겼다.
■ 복음서의 세례자 요한
○ 복음서의 두 본문(마태 14,3-12; 마르 6,17-29)에서는 헤로데 안티파스의 생일잔치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 잔치에는 지배 엘리트들이 초대되었다. 헤로데가 벌인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연회는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는 엘리트 의식의 표현으로서, 사회적 경계들을 통한 지배 그룹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 위계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자리였다.
○ 헤로데 안티파스의 통치는 억압과 폭력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그의 생일잔치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마태 14,3-4) 사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가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을 비판하였다. 그것은 율법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네 형제의 아내의 치부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네 형제의 치부이다.”(레위 18,16) “어떤 사람이 자기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살면, 그것은 불결한 짓이다. 그가 제 형제의 치부를 드러낸 것이므로, 그들은 자손을 보지 못할 것이다.”(레위 20,21) 지배 엘리트들은 근친결혼을 통하여 동맹을 결성하고 영토를 확장했으며 권력을 성장시켰다. 세례자 요한은 이 중앙 권력의 동맹에 저항한다. 여기에서 헤로데가 로마 제국의 대행자라면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대행자(agent)이다.
○ 헤로데의 권력 행사는 파괴적이었다. 그는 현 상황(status quo)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의 뜻에 저항하고 하느님의 대행자에게 폭력을 행사하였다. 헤로데의 생일잔치는 사치와 탐욕, 억압과 폭력을 잘 드러나는 자리였다. 가난한 이들이 배제된 지배 엘리트들만의 향연은 결국 죽임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고 죽였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던 권력자 헤로데에게 요한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는 권력 앞에서 요한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할 말은 하였다. 그런 요한을 헤로데는 죽였던 것이다.
■ 요세푸스의 세례자 요한
○ 기원후 1세기 유다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스무 권으로 된 『유다 고대사』를 통해 창조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제1차 유다 봉기의 발발까지의 역사를 기록한다. 이 작품의 집필 연대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통치 제13년, 즉 93-94년이다. 요세푸스의 작품들 중에는 세례자 요한, 예수, 그리고 야고보를 언급하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들이 있는데, 『유다 고대사』 18권 116-119에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서술한다.
○ “한편 일부 유다인들에게는 헤로데의 군대가 패배한 것이 하느님의 정당한 징벌로서 요한의 일에 대한 복수로 여겨졌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였다.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다인들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서 덕을 닦고 서로 정의를 행하며 하느님 앞에서 경건을 행하기를 강조하였다. 요한이 보기에 세례는 무슨 죄든 용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은 이미 정의로 인해 완전히 정화되었기에 몸의 정화를 위한 것이어야 했다. 요한의 말을 듣고 감동한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 들었는데, (군중들은 요한이 하는 말은 무엇이나 들을 정도로) 요한이 백성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것을 본 헤로데는 그가 반역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는 시기를 놓쳐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먼저 요한을 처형하여 후환을 없애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결국 헤로데의 의심 때문에 요한은 앞서 언급한 마케루스로 묶인 채로 보내어져 그 곳에서 처형되었다. 유다인들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헤로데를 징벌하기 원하셨기 때문에 헤로데 군대의 패배는 요한의 일에 대한 복수였다.”
■ 세례자 요한과 오늘
○ 역사는 세례자 요한의 삶과 죽음이 무의미하지 않고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세례자 요한을 죽인 헤로데의 행동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저항과 불신앙은 적대감과 폭력으로 표현된다. 하느님의 예언자 세례자 요한은 정치적 권력자로부터 희생당하였다. 그러나 권력은 잠시뿐이나 진실과 정의는 영원히 남는다.
○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권력이 존재하고 지배하는 현실을 살고 있다. 정치 권력뿐 아니라 경제 권력, 문화 권력, 그리고 종교 권력은 기득권을 누리며 현 상황의 질서와 가치를 형성하고, 사람들의 삶에 유형·무형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예수님을 뒤따르는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다양한 형태의 권력들에 직면하면서 하느님 나라의 질서와 가치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권력들이 공동선을 짓밟고 정의와 평화를 위협할 때 그리스도인은 그것에 용감하게 도전하고 하느님 나라의 대안을 실천해야 한다. 왜냐하면 권력은 잠시뿐이지만 진실과 정의는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연구소에서 성서학박사학위(S.S.D.)를 취득하였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빛, 2015년 7월호, 송창현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www.wga.hu/art/c/caravagg/10/62behea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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