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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이스라엘 이야기: 보리 빵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27 조회수5,829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보리 빵


‘다섯 개 빵’이 보여준 ‘나눌수록 커지는 사랑’



갈릴래아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빵의 기적 성당 . 6월 18일 화재 이전 모습이다.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아랍 아낙들이 구워내는 빵을 보면, 성경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제과점에 진열된 예쁜 케이크가 아니라, 달군 솥뚜껑에 반죽을 펴서 둥그렇게 굽는다. 화덕에 불을 지펴 굽기도 한다. 그러면 색도 노릇노릇한 것이, 석회암이 납작 눌린 것처럼 나온다. 이스라엘 토양은 대부분 누르스름한 석회암이다. 빵과 돌이 동색이니, 자식에게 빵 대신 돌을 주겠느냐는 성경 말씀이 쉽게 이해된다(마태 7,9).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셨다는 빵 다섯 개도 이렇게 구웠을 것 같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단식하실 때는, 사탄이 돌을 빵으로 바꾸어 보라고 유혹했다(마태 4,3). 뜨겁고 건조한 곳에서 사십일 동안 음식을 끊으면, 나중에는 돌인지 빵인지 헷갈릴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성서 히브리어로 빵을 ‘우가’라고도 하는데, 어원은 ‘둥글다’이다. 화덕에서 구운 모양대로 이름이 된 듯하다. 무화과나 건포도, 대추 야자 등을 넣으면, 단맛을 더할 수 있었다. 다윗은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뒤, 잔치 음식으로 건포도 과자와 대추 야자 과자 등을 돌렸다(2사무 6,19). 이스라엘에 이웃한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물고기 모양 빵틀도 발견되었으니, 이건 완전히 메소포타미아 판 붕어빵이다.

지금은 뭐든 풍요로운 시대지만, 반세기 전만해도 우리에게는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었다. 부모들은 굶는 자식을 보며, 파종할 곡식으로 굶주림을 면할 것인가, 다음 해를 기약할 것인가 고민해야 했다. 고대 이스라엘도 비슷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시편 126,5-6은 이렇게 노래한다.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고대 이스라엘도 가난한 이들은 보리 빵을 먹고 부유층은 밀 빵을 먹었다 하니, 꽁보리밥이 우리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보다. 당시 밀 가격은 보리 가격의 두 배였다(2열왕 7,16 참조).

아랍 여인이 빵반죽을 만들고 있다.


요한 6,1-15은, 예수님이 빵과 물고기로 군중을 먹이신 기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리를 추수하는 파스카 무렵이었던 만큼(4절), 빵도 보리 빵이다(9절). 기념 성전은 갈릴래아 호수 북서쪽 ‘타브가’에 있다. 서기 4세기 후반 에제리아 수녀님이 쓰신 순례기에 이렇게 묘사된 곳이다. “갈릴래아 호수를 바라보는 곳으로 카파르나움에서 멀지 않다. 물이 풍부해 푸른 초장이 있고, 대추 야자를 비롯한 나무들이 많이 자란다. 이 풍성한 곳에서 예수님은 오천 명 이상을 먹이셨다.” 푸르고 물 많은 장소라 기록되었듯이, 예부터 그리스어로 ‘헵타페곤’, 곧 ‘일곱 샘’으로 불렸다 한다. 지금은 발음이 와전돼, 타브가가 되었다. 타브가에서 카파르나움까지는 버스로 오 분, 도보로 삼십 분 거리다. 성전 제대 밑에는 검은 반석이 있는데, 예수님이 빵을 들고 감사드리신(11절) 곳으로 전해진다. 제대 앞에는 사병이어 모자이크가 있다. 비잔틴 로마 시대에 봉헌된 옛 성당의 유적이다. 그런데 오병이어가 아니라 사병이어인 까닭은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병들고 가난해, 도우심을 바라고 당신을 따라온 이들을 측은히 여기셨다(1절). 그래서 한 아이가 가진 빵과 물고기로(9절) 모두를 먹이셨다.

고대에는 대부분 도보로 다녔다. 한번 길을 떠나면 며칠 집을 비울 수도 있으니, 빵이나 구운 생선, 염장 생선 등을 식량으로 챙겼다. 생선은 갈릴래아 바다에서 잘 잡히는 정어리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이른 봄에는 정어리가 하룻밤에도 그물이 찢어지게 잡혔다. 그러니 당시 군중도 식량이 조금씩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선뜻 꺼내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이를 생각하다가 대신 굶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낌없이 주시는 예수님을 따라 덩달아 나누다 보니, 어느새 빵이 불어나 오천 명이 먹고도 충분해졌다. 게다가 남은 조각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차, 분명 기적이었다. 곧, 오병이어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기쁨도 나누면 두 배가 되듯이, 나눔 속에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체험할 수 없다는 것. 하느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 불리셨듯이, 예수님은 빵과 물고기로 군중을 먹이셨다. 나누는 기쁨도 알게 하셨다. 곧, 이것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라, 주님의 측은지심과 애정으로 하늘나라를 미리 보여 주신 사건이기에 현재의 나에게도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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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7월 26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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