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야기] 스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약속하신 장소
-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한 스켐(가운데 부분) 지역. 왼쪽은 그리짐 산, 오른쪽은 에발 산이다.
스켐은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열두 지파들이 모이던 이스라엘의 중심지였다. 예루살렘에서는 북쪽으로 65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다. 히브리어로 ‘쉬켐’이라 하며, ‘어깨’를 뜻한다. 북쪽에 에발 산, 남쪽에 그리짐 산을 두어, 동네 모양이 어깨를 닮았기 때문이다. 스켐은 사연도 많은 곳이라, 야곱의 딸 디나,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 등을 떠올린다. 지파 별로 그리짐 산과 에발 산에 서서, 시나이 산 계약에 따른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라는 명령도 받았다(신명 27,12-13). 여호수아는 그 말씀대로 백성을 모아, 축복과 저주를 읽어 준다(여호 8,30-35). 그가 죽기 전에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갱신하도록 한 곳도 스켐이었다(여호 24장).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신 ‘야곱의 우물’(요한 4,6) 또한 스켐에 있다.
스켐에 얽힌 최초 인물은 아브라함이다. 가나안에 들어온 그는 스켐에서 처음 쉬어갔다. 하느님이 후손과 가나안 땅을 약속하시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주님을 위한 제단을 쌓는다(창세 12,7).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귀향한 뒤, 스켐에 땅을 사 정착했다(창세 33,18). 그런데 딸 디나가 동네 처녀들을 보러 나갔다가, 족장 하모르의 아들 스켐에게 변을 당한다(스켐은 사람 이름으로도 쓰였다). 집안 명예가 실추되고(창세 34,7), 디나는 스켐의 집에 잡혀 있었다(17절, 26절 참조). 스켐의 무리가 수적으로 우세했기에, 야곱의 아들들은 계략을 써(13절) 디나를 구하려 한다. 하지만 시메온과 레위가 도시를 마구 파괴해(30절), 야곱은 임종 전에도 그 사건을 언급하며 둘을 꾸짖었다(창세 49,5-7). 야곱의 가족이 이집트로 내려간 뒤에는, 요셉이 가나안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창세 50,25). 훗날 여호수아가 그 유언대로 유골을 스켐으로 옮겨(여호 24,32) 오늘에 이른다.
-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신 야곱의 우물. 스켐성당에 보존돼 있다. 판관 시대에는 기드온의 서자 아비멜렉이 스켐에서 임금 자리에 올라, 이스라엘을 삼 년 다스렸다. 그러다가 스켐 지주들이 일으킨 반란 전쟁 끝에 최후를 맞는다(판관 9장). 왕정이 시작된 뒤에도 스켐은 열두 지파 원로들이 모여 동맹을 다지던 중심지였다. 그런데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이 왕위를 확인받으려고 갔다가, 지혜롭지 못하게 처신해 이스라엘의 분단을 초래한다(1열왕 12,1-19). 솔로몬이 부과한 강제 노역을 줄여달라는 원로들 요구에, ‘내 새끼손가락이 아버지 허리보다 더 굵다’며 묵살한 탓이다. 결국 북왕국은 예로보암에게 넘어갔으며, 스켐이 첫 수도가 되었다(1열왕 12,25).
스켐은 사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일단 식수가 어느 정도 보장된 곳이었기에, 중심 도시가 될 수 있었다. 야곱의 우물을 비롯해, 지하수와 샘이 비교적 풍부하다. 토양은 적갈색의 테라 로사(terra rossa)라 포도, 올리브, 무화과 등 농사에 적합했다. 목축에도 좋아, 야곱은 헤브론에 살 때 스켐 근처로 아들들을 보내 가축을 치게 했다(창세 37,12). 스켐은 또한 족장 도로를 낀 교통의 요충지였다. 족장 도로는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이 다닌 도로라 붙여진 이름이다. 브에르 세바에서 헤브론과 예루살렘을 거쳐 스켐에 이른다. 현재 이스라엘에서는 60번 도로다. 북쪽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 보통 이 길로 다녔다(예레 41,5 참조). 그러다가 기원전 8세기에는 스켐의 운명이 바뀐다. 북왕국을 정복한 아시리아가 사마리아에 정체성 말살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2열왕 17,24-41). 곧, 이방인들을 심어 히브리 혈통을 흐리려 했다. 그때부터 이방의 피가 섞인 사마리아인 천시 사상이 싹터, 유다인들은 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고 한다(요한 4,9). 그런데 예수님이 다들 꺼리는 사마리아로 들어가셨으니, 그 행보가 남다르다. 다른 도로가 있음에도 사마리아를 가로질러 가셔야 했음은(요한 4,4) 유다교의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주님은 야곱의 우물에서 만난 여인에게 물을 청하신 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수에 대해 가르치셨다.
중심에서 외곽으로 밀려난 스켐. 지금은 나라 속의 나라처럼, 이스라엘과 분리된 팔레스타인 자치구가 되었다. 스켐성당에 보존된 야곱의 우물은 예부터 사마리아인들을 떠올려 주는 상징 같은 유적이다. 그런데 현재도 스켐은 팔레스타인으로서 이스라엘과 섞이지 못하는 또 다른 사마리아니, 야곱의 우물은 여전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남았다.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8월 16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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