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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이스라엘 이야기: 라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31 조회수5,267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라헬


야곱이 사랑한 아내, 유다인의 어머니로 추앙받아



베들레헴 입구에 있는 라헬의 무덤.


베들레헴 입구에는 라헬의 무덤이 있다. 유다인들의 대표적 순례지로서, 불임으로 고통받는 여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라헬은 히브리어로 ‘암양’을 뜻하는데, 야곱을 처음 만나던 날도 이름 뜻에 어울리게 양을 치고 있었다(창세 29,6). 언니 레아와 달리 용모가 아름다워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아들 요셉이 그 외모를 이어받게 된다(창세 39,6 참조). 그러나 오랫동안 아이가 없어, 몸종 빌하를 통해 단과 납탈리라는 아들을 먼저 얻었다(창세 30,1-8). 주께서 라헬을 기억하시어 뒤늦게 아이를 가진 뒤에야, 불임의 수치를 “없애 주셨다”며 기뻐하고 아들을 “하나 더 주시기”를 기원해 요셉이라 이름 붙였다(창세 30,22-24). 요셉의 어근은 ‘아사프’ 또는 ‘야사프’로서, 전자는 ‘없애다’, ‘가져가다’이고 후자는 ‘더하다’여서 이중 의미를 띤다. 라헬은 소원대로 가나안에 들어온 뒤 벤야민을 낳지만, 야곱의 의도치 않은 말이 씨가 되어 난산 끝에 세상을 떠났다.

사연은 이러하다. 형들의 계략으로 이집트에 팔려간 요셉은 우여곡절 끝에 재상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다가 가나안 흉년으로 야곱 아들들이 곡식 풍부한 이집트로 내려왔을 때 재회하게 된다. 형제들을 먼저 알아 본 요셉은 그들을 시험하려고, 벤야민에게 금잔을 훔쳤다는 누명을 씌웠다(창세 44,5.15).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사건은, 라헬이 아버지 라반에게서 집안 수호신을 훔친 창세 31,19를 떠올리게 한다. 집안 수호신이 종교적 물건이었듯, 금잔도 이집트에서 점을 치는 데 사용되었다(창세 44,5: “이것은 내 주인께서 마실 때 쓰시는 잔이며 점을 치시는 잔이다” 참조). 다만 실제로 훔친 라헬은 발각되지 않고 훔치지 않은 벤야민만 잡혀, 어머니의 죗값을 아들이 묘하게 돌려받은 형국이 되었다.

헨리 라일랜드의 작품 ‘우물가의 라헬’.

 

 

유다 전승은 라헬이 수호신을 훔친 사건에 대해, 아버지가 우상 숭배를 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한 행동이라고 풀이했다(창세기 라바 74,5). 하지만 라헬의 행동을 알지 못한 야곱은, 장인이 도둑맞은 수호신을 찾으러 오자 그런 짓을 한 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맹세한다(창세 31,32). 그 뒤 라헬은 야곱의 맹세 탓인지 벤야민을 낳다가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벤야민은,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과 맞바꾸어 얻은 아들이다. 극심한 산고 탓에 라헬은 아들 이름을 ‘벤 오니’라 부르려 했지만, 야곱이 ‘벤야민’으로 고친다(창세 35,18). 벤 오니는 ‘내 고난의 아들’이라는 뜻이라, 라헬을 죽게 한 해산의 고통을 반영한다. 반면 벤야민은 ‘내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이므로, 좀 더 상서로운 이름이다. 오른쪽은 ‘힘’, ‘방어력’ 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야민’은 성서 히브리어로 ‘남쪽’이라는 뜻도 있기에, 벤야민이 형들과 달리 남쪽에서 태어났음을 암시하는 이름도 된다(다른 아들들은 모두 하란에 있는 라반의 집에서 출생했다). 훗날 벤야민 지파가 차지하게 되는 상속 재산도 이스라엘 남쪽에 있었다(가장 남쪽인 유다 지파 바로 위였다).

라헬이 죽은 곳은 ‘베텔’에서 ‘에프랏’으로 오던 길목이었는데, 에프랏은 베들레헴의 옛 이름이다(창세 48,7 등 참조). 야곱은 라헬을 자기 가족이 묻혀 있는 헤브론의 막펠라 동굴에 묻지 않고 ‘베들레헴 가는 길 가’에 묻었다(창세 35,19-20). 베들레헴은 장차 메시아가 나올 곳이었으니(미카 5,1), 그 입구에 라헬이 묻혔다는 사실이 상징적이다. 지금도 유다인들은 라헬을 민족의 어머니로 추앙하지만, 당시도 라헬의 도움 덕분이었을까? 이방인이었으나 지극한 효심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한 모압 여자 룻이 베들레헴에서 보아즈와 혼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집안을 세운 라헬처럼 되라는 그곳 주민들의 축복(룻 4,11)처럼 룻은 다윗 왕실로 이어지는 계보를 잇게 된다. 이스라엘이 라헬을 민족의 어머니로 높인 예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예레미야는 라헬을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후손들을 보며 통곡하는 어머니로 그렸고(예레 31,15), 마태오 복음(2,18)은 헤로데가 유다의 임금 탄생 소식에 어린 남아들을 살해하자 어머니 라헬이 통곡한다고 한탄했다. 평생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죽어서는 베들레헴 입구에 홀로 남겨진 라헬. 그렇지만 요셉을 낳아 야곱 집안이 가나안 흉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기에, 그이는 민족의 어머니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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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1월 31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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