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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이스라엘 이야기: 호세아의 아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4-12 조회수7,859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호세아의 아내


음란한 아내… 우상 숭배 빠진 이스라엘에 빗대

 

 

- 북왕국의 바알 숭배를 표현한 부조 작품.

 

 

호세아는 일반 신자들에게 인지도가 그리 높은 예언자는 아니다. 성경에서도 그가 북왕국에서 활동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고향도 묻힌 곳도 베일에 싸여 있다. 하지만 갈릴래아 지방에 올라가 이즈르엘 평야를 보면, 늘 호세아가 떠오른다. 그의 첫아들 이름이 바로 이즈르엘(호세 1,4)이었기 때문이다. 호세아는 기원전 8세기 사람으로, 히브리어로는 ‘호셰아’라 한다.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어근만 보면, 예수님의 이름인 예슈아와 의미가 같다. 활동 무대가 북왕국인 만큼, 그의 신탁에는 북쪽 특유의 사투리가 많이 나타난다. 이스라엘을 부르는 애칭도 예루살렘이나 시온이 아니라, ‘에프라임’, ‘사마리아’다.(7,1; 11,8 등) 에프라임 사람 예로보암이 세운 북왕국의 수도가 사마리아였기 때문이다. 호세아는 특히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혼인 관계로 보아,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신부에 비유한 선구자였다.(2,22: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등 참조)

 

특이하게도 그는 창녀와 혼인해야 했는데(1,2), 정상적인 남자로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 혼인은 이스라엘의 배신을 꼬집기 위함이었다. 곧, 하느님을 뒤로하고 바알과 불륜 잔치를 벌이는 이스라엘이 창녀 아내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회심하는 날, 하느님을 더 이상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는 예고(2,18)도, 당시 바알 숭배가 얼마나 활개치고 있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바알은 가나안 신의 이름인 동시에, 주인·남편을 뜻하는 보통 명사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바알의 이름을 보통 명사로 전환하는 언어유희를 발휘해, 이스라엘의 회개를 예고하고 또 촉구했던 것이다. 호세아가 아내로 맞은 고메르는 직업 매춘부는 아니었으나, 품행이 음란한 여자였던 것 같다. 다른 남자를 따라 가출할 때마다(3,1) 호세아가 찾아와야 했으니, 아이도 자기 아이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메르를 끝까지 버리지 않음으로써,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를 충실하게 표현해 주었다. 곧, 자신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신탁 전달의 도구로 삼아 백성을 일깨우려 했다.

 

호세아가 온 삶으로 그려낸 이 혼인 비유는 후대 예언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어, 에제키엘 신탁에는 다음과 같이 반영되었다(16,8: “내가 옷자락을 펼쳐 네 알몸을 덮어 주었다. 나는 너에게 맹세하고 너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하여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다” 등). 광야 유랑 시절을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신혼으로 묘사한 신탁은(호세 2,16-17), 예레미야에게 영감을 주었다(2,2: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너는 광야에서, 씨 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

 

- 이즈르엘 평야 전경.

 

 

혼인 비유는 바빌론 유배 이후 시대에도 이어진다. 일례로, 이사 54,6을 보자. “정녕 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아 마음 아파하는 아내인 양 퇴박맞은 젊은 시절의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 우상 숭배라는 불륜을 저지른 이스라엘은 소박당해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하느님이 그들을 다시 불러들이실 것임을 알리는 신탁이다. 이 전통은 신약에도 이어져, 예수님이 당신을 신랑에 비유하셨다(마태 9,15: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묵시 21,2은 천상 예루살렘을 하느님의 신부로 묘사했다(“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골적이고 색정적인 표현이 많아 정경(政經)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 아가도 혼인 비유에 힘입어, 유다교에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사랑으로,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님과 교회의 사랑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호세아서는 예언자의 사생활을 많이 언급하지 않으므로, 자세한 일생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음란한 여인과 혼인해 아내의 배신을 지켜보아야 했던 수치와 아픔, 백성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훈계를 전달해야 하는(9,7 참조) 소명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십자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호세아는 줄기차게 회개를 촉구하며, 자신이 창녀 아내를 용서하듯 하느님도 이스라엘을 용서하실 것임을 알렸다. 비록 수치와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그 무게를 견디도록 도와준 힘은 자신이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아니었겠는가?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4월 10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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