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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의 세계: 12지파 이야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5-03 조회수16,705 추천수4

[성경의 세계] 12지파 이야기 (1)

 

 

이스라엘 12지파 시조는 야곱의 12아들이다. 레아가 절반인 6명을 낳았다. 르우벤, 시메온, 레위, 유다, 이싸카르, 즈불룬이다. 몸종 질파는 가드와 아세르를 낳았고 라헬은 요셉과 벤야민을, 그녀 몸종 빌하는 단과 납탈리를 낳아 12명이 되었다. 레위와 요셉 지파는 없다. 요셉의 두 아들 므나쎄와 에프라임이 지파 이름을 받았다.

 

레위가 지파 이름을 못 받은 건 아버지 유언 때문이다(창세 49,7). 일행이 사마리아에 머물 때 그곳 족장 아들이 야곱의 딸 디나Dinah를 범했다. 그리곤 혼인을 청했다. 족장 하모르는 이참에 교류를 갖자고 제안했다. 시메온과 레위는 남자들 할례를 먼저 주장했다. 하모르와 아들이 할례로 아파하고 있을 때 둘은 성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했다(창세 34,1-31).

 

야곱은 심하게 꾸짖었고 임종 때 후손이 흩어져 살 것이란 유언을 남긴 것이다. 이후 시메온 지파는 역사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레위 자손은 가나안 정착 때도 땅을 분배받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지파에 붙어살며 제관(祭官) 업무를 전담해야 했다. 한편 야곱은 넷째 아들 유다를 축복하며 형들이 그를 섬기리란 유언을 남겼다. 장자 르우벤이 제외된 것은 빌하와의 동침사건으로(창세 35,22) 눈밖에 낫기 때문이다.

 

모세의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착에 성공한다. 그리곤 지파별로 땅 분배를 시작했다. 지파 이름이 정착한 땅 지명이 되었다. 유다 지방 에프라임 지방은 이렇게 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유다와 벤야민 지파는 남쪽을 할당받았고 나머지 10지파는 북쪽을 차지했다. 지파들은 자기네 땅에 각자 제단을 마련했고 종교행위도 개별적이었다. 철저한 지방 분권이었다. 훗날 이들을 연합해 통일국가를 이룬 사람이 유다 지파의 다윗과 솔로몬이다.

 

하지만 솔로몬이 죽자 북쪽 열 지파는 독립한다. 중심은 에프라임 지파였다. 요셉의 차남 에프라임 후손들이다. 처음 그들에게 할당된 땅은 이스라엘 중부였다. 비옥한 초지가 많아 목축업이 발달했다. 그리고 실로와 베텔같은 종교 유적지가 있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차츰 세력이 강해졌고 이웃 지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원전 931년 에프라임 지파는 북쪽 지파를 규합해 유다가문 통치에 반발한다. 북이스라엘 왕조의 출발이다. 초대 임금은 에프라임 지파의 예로보암 1세였고 수도는 사마리아였다. [2016년 5월 1일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12지파 이야기 (2)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Assyria)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다. 백성은 포로가 되었다. 반항하던 이들은 살해되고 남은 자들은 수도 니네베와 인근 나라로 보내졌다. 이스라엘 땅엔 타민족이 강제 이주되었다. 사마리아에선 히브리인의 거주가 엄격히 제한되었다. 아시리아는 강력한 통혼정책을 편 것이다. 당시 정복자들은 그렇게 해서 제국의 여러 민족을 동화시켜 나갔다. 세월이 흐르자 북쪽 10지파는 극도로 약화되었다. 이후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없어진 것은 아니다. 유다지파의 표현이었을 뿐이다.

 

여호수아는 땅 분배를 시작할 때 유다지파를 남쪽에 배치했다(여호 15,1). 동쪽경계는 사해였고 서쪽은 지중해였다. 예루살렘과 시나이 반도 사이 대부분 땅이었다. 메시아 배출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예루살렘 성전은 이 지역에 세워진다. 이스라엘 중심이 된 것이다. 예루살렘은 원래 벤야민 지파 땅이었다(여호 18,28). 가나안 일곱 부족 중 하나인 여부스족 소유였는데 다윗의 정복으로(2사무 5,7) 유다지파 땅이 된 것이다. 이후 강력한 지파로 탈바꿈한다. 다윗의 등장으로 왕위마저 가져간다. 왕권을 장악할 만큼 세력은 막강해졌던 것이다.

 

벤야민지파는 이스라엘 중부지방을 할당받았다. 그런 이유로 왕국분열 때 벤야민지파도 갈라진다. 땅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지형적 아픔이었다. 경계선 북쪽사람은 에프라임지파를 따라갔고 남쪽은 유다지파를 따라갔다. 이후 벤야민지파는 약해진다. 왕위마저 내주게 된다. 이스라엘 첫 임금 사울과 바오로는 벤야민지파였다.

 

르우벤(Reuben)은 야곱의 장남이다. 말뜻은 보라 아들이다. 르우는 보다라는 동사에서 왔고 벤은 아들을 뜻한다. 야곱과의 소외감에서 첫아들을 낳았던 레아가 붙인 이름이다(창세 29,32). 하지만 르우벤은 장자의 기득권을 살리지 못한다. 상속권은 요셉에게 갔다(1역대 5,2). 야곱의 소실 빌하와 동침해(창세 35,22) 아버지 눈밖에 낫기 때문이다. 사건은 르우벤의 우발적 사고가 아니다. 라헬에 대한 반감이며 라헬만 좋아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었다. 작심하고 라헬의 몸종이자 아버지 소실인 빌하를 범했던 것이다. 생모 레아를 위해 합환채를 갖다 줄 만큼 효자였고(창세 30,14) 요셉을 죽이자 했을 때 피는 흘리지 말자며 살리려 했던 르우벤이었다. 하지만 야곱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후손들은 요르단 강 동쪽의 국경지대에서 살았다(민수 32,37). [2016년 5월 8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12지파 이야기 (3)

 

 

레위는 야곱의 셋째 아들이지만 흩어져 살라는 유언을 받는다(창세 49,7). 여호수아는 후손들에게 땅 분배를 하지 않았다. 다른 지파에 붙어살며 율법과 제관 업무만 전담토록 했다. 그러면서 병역과 노동에서 제외되는 특전을 줬다. 지파들이 내는 십일조로 살게 한 것이다. 당시 중동 국가들은 일종의 조세제도로 십일조를 실시했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레위지파 사람들 역시 십일조를 바쳤다(민수 18,26). 사제들은 이들이 내는 ‘십일조의 십일조’로 생활했다. 현대의 유대교는 십일조 제도를 폐지했다. 성전 봉사자 레위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곱의 셋째 아들 레위는 사마리아에서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창세 34,1-31). 스켐의 족장 아들이 여동생 디나를 겁탈했기 때문이다. 보복으로 주민들을 살해하고 동네를 약탈했던 것이다. 레위는 아버지 야곱이 죽을 때까지 눈 밖에 났고 흩어져 살라는 유언을 받았다. 사건엔 둘째 아들 시메온도 가담했기에 그의 후손 역시 흩어져 살라는 유언을 받았다.

 

시메온지파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 별로 없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탈출 후 첫 인구조사를 한다. 민수기 1장이다. 시메온지파 20세 이상 남자는 59,300명이었다(민수 1,23). 두 번째 조사는 38년 뒤 있었는데 22,200명이었다(민수 26,14). 절반도 안 되는 숫자다. 그만큼 약화된 것이다. 이들이 정착한 땅은 이스라엘 최남단 네겝(Negev) 사막지대였다. 황량한 땅으로 경작과 거주는 거의 불가능했다. 네겝이란 말 자체가 메마른 남쪽이란 뜻이다. 열악한 땅을 배정받았던 것이다.

 

네겝 사막엔 광야가 둘 있다. 신(Ciyn)광야(민수 33,11)와 친(Tsin)광야다(민수 33,36). 이스라엘이 40년간 방황했던 곳이며 이 지역 오아시스 마을이 카데스다(민수 13,26). 모세는 이곳에서 정탐꾼 12명을 가나안에 보냈고 그들의 보고를 들었다. 여호수아와 칼렙은 승산 있다고 했지만 10명은 이길 수 없다며 전쟁을 반대했다. 이후 민중은 술렁거렸고 모세에 반항하는 세력이 커지자 주님께서 개입하셨다. 광야의 40년 방황은 이렇게 해서 생겨난 보속이다. 카데스 지역은 이집트와의 국경이다. 북동쪽으로 80km 올라가면 이스라엘 4번째 도시 브에르 세바가 있다.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에서 브에르 세바까지란 말은 이스라엘 전체를 뜻하는 관용구다. 북쪽 단 지방에서 남쪽 브에르 세바까지란 표현이다. [2016년 5월 15일 성령 강림 대축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12지파 이야기 (4)

 

 

이집트 탈출 후 첫 인구조사 때 가드지파 남자는 45,650명이었다(민수 1,24). 이들은 요르단 강 동쪽 일대를 배정 받는다(여호 13,27). 그곳엔 아모리족 헤스본 왕국이 있었고 임금은 시혼이었다(민수 21,21). 인근엔 옥 임금이 다스리는 바산 왕국이 있었다. 지역의 옛 명칭은 아카드어로 아무루(Amurru)다. 아모리 족이란 용어는 지역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을 향하던 이스라엘은 이곳을 지나야 했다. 모세는 통과를 요청한다. ‘임금님 땅을 지나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길만 따라가겠습니다(민수 21,22). 하지만 왕은 허락하지 않는다. 싸움을 걸어온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사활을 건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승리했고 땅은 가드, 르우벤, 므나쎄지파에게 나눠졌다(민수 32,33). 요르단 평원이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였고 목축에 좋은 땅이었다.

 

즈불룬은 레아가 낳은 막내아들이다. 야곱은 후손이 바닷가에 살 것이란 유언을 남겼다(창세 49,13). 이들 몫이 된 땅에는 갈릴래아 호수가 있다. 바다라고 여길 만큼 큰 호수다. 나자렛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는 작은 촌락이었지만 현재는 갈릴래아에서 가장 큰 도시다. 이사카르 지파는 즈불룬 지파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살았다. 호수 남쪽이다. 예수님 변모 사건이 있던 타보르 산(588m)은 두 지파에 걸쳐있다. 북이스라엘 3번째 왕은 이사카르 지파 출신의 바아사(Baasha)다(1열왕 15,33). 쿠데타로 왕이 된 사람이다.

 

에프라임지파는 초기엔 므나쎄지파보다 약했다. 여호수아의 등장으로 우위가 된다. 모세는 레위지파였지만 에프라임지파의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지목했다. 그만큼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이다. 가나안 땅을 나눌 땐 중부지역 전체를 차지해 유다지파와 양대 축을 형성한다. 이후 여호수아는 계약 궤가 있는 성막(만남의 천막)을 실로(Shiloh)에 안치했다(여호 18,1). 계약 궤에는 모세의 십계 판이 있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떠돌 때 사용하던 이동식 성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실로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도시로 굳어졌다.

 

단지파는 북쪽 도시 레셈에 거주했다(여호 19,47). 고고학 발굴로 레셈은 신약성경의 카이사리아 필리피(Caesarea Philippi)로 추정되고 있다. 현대지명은 바니아스(Banias)다. 인근에 헤르몬 산(2,814m)이 있고 요르단 강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요르단의 뜻은 단에서 흐른다는 의미다. 시리아 땅이었지만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 땅이 되었다. [2016년 5월 22일 삼위일체 대축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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