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제2이사야의 신학? 예언자가 말하는 인간의 공통된 성향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다른 민족들도 다 교만에 물들어있음을 이사야는 고발합니다. “모든 백성이, 에프라임과 사마리아의 주민들이 이를 알고서도 오만하고 자만한 마음으로 말하였다. ‘토담이 허물어졌으니 네모 돌로 쌓자. 돌무화과나무가 부서졌으니 향백나무로 대신하자.’”(9,8-9) “에프라임 주정꾼들의 거만한 화관은 발에 짓밟히리라.”(28,3) “우리는 너무나 도도한 모압의 교만에 대하여 들었다. 그의 거만과 교만과 방자함 그의 허풍에 대하여 들었다.”(16,6)
물질에만 의지하는 인간, 그 교만의 결과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질에만 신뢰하는 인간은 부모님을 통하여 자신을 낳아주신 하느님을 도무지 몰라보게 됩니다. 아니 눈에 얼핏 띠지 않는 하느님은커녕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까지도 애써 외면하는 죄를 별 거리낌조차 없이 범하게 됩니다. 자신의 뿌리인 부모님과 그 은혜도 모르고, 온 누리와 우리 모든 조상을 낳아주신 영원하신 분도 몰라보는 인간은 결국 자신의 뿌리를 캐려하지 않거나 애써 외면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러한 인간의 다음 모습은? 자기 자신의 본질까지도 알아보려 하지 않거나 모르게 되지 않겠습니까? 웬만한 강아지나 고양이나 소들도 제 주인을 알아보는 법인데 조상을 외면하는 인간은 교만의 늪에 빠져 산짐승이나 들짐승만도 못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사야는 하느님을 거역한 그런 이스라엘 - 인간을 두고 읊었습니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1,3) 나아가 이사야는 그런 인간은 나락으로 떨어지리라고 선언합니다. “인간이 비천해지고 사람이 낮아지리라. 거만한 자들의 눈도 낮아지리라.”(5,15) 하느님을 외면한 인간은? 그는 하느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런 이는 자연스레 이웃과 피조물에 대하여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에 대한 무관심은 이웃과 피조물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집니다(프란치스코 교황의 제49차 세계 평화의 날<2016.01.01> 담화 3항). 그러나 겸손한 자는? 그의 기도는? 그는 살게 되고 그의 기도는 반드시 답을 얻습니다. 그 예를 히즈키야의 기도와 이사야의 중재기도에서 봅니다(이사 38,1-9; 2열왕 20,1-11). 중병에 걸려 죽음을 직감한 히즈키야 임금이 겸손한 자세로 슬피 통곡하며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주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언자를 파견하십니다. “가서 히즈키야에게 말하여라. ‘너의 조상 다윗의 하느님인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자,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서 너와 이 도성을 구해내고 이 도성을 보호해주겠다…”(이사 38,5-6) 죽음의 문턱에서 통곡하는 가운데 있는 힘을 다해 주님께 겸손하게 기도드린 덕분에 히즈키야 임금은 죽을병에서 치유 받았을 뿐 아니라, 15년을 더 살게 된다는 표징으로 선왕 아하즈의 해시계가 열 칸씩이나 뒤로 돌아가는 기적까지 맛보게 되지 않습니까? 제2이사야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이사 40,1-2) 사실 제2이사야서 이끎말(이사 40,1-11)은 새 시대가 동터오고 있음을 알립니다. 제2이사야서 이끎말을 들여다보면? 맹위를 떨치던 거대한 제국이 멸망하고 새로운 제국이 떠오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변화무쌍하던 당시 국제정세를 환히 펼쳐 보여주는 듯합니다. 북쪽에서는 아시리아 제국이 서산에 기우는가 하면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폭정을 일삼던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기운을 잃어갑니다. 반면 저 멀리 페르시아가 급부상하게 됩니다. 페르시아 제국(오늘 날의 이란 땅)의 임금 키루스가 바빌론을 정복하여 그곳을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키루스는 다음과 같이 칙령을 반포합니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2역대 36,23)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아시리아나 바빌론 제국의 지배자들은 지금껏 정복한 나라 백성을 유배시키는 등 폭정을 일삼았지만 페르시아의 임금 키루스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정복한 나라 주민들이 평화로이 살도록 도왔으며 그들 고유의 종교까지도 인정해주었습니다. 정복당한 소수민족들은 지금까지 맛보지 못하던 ‘획기적이고도 새로운 식민정책’을 맛보며 나름대로 새 시대를 꿈꾸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제2이사야의 신학은? 유다인들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던 예루살렘 성전을 잃고 나서 멀리 바빌론으로 떠나와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유다인들에게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보내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그가 바로 ‘제2이사야’입니다. 하느님은 그로 하여금 바빌론 탈출이 이집트 탈출보다도 더욱 따뜻하게 펼쳐질 것이라는 ‘복음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 41,11) 제2이사야의 창조신학은? 그는 하느님께서 모든 만물의 창조주시라는 사실을 반방에 선포합니다. 유배지 한 가운데서 살아가는 제2이사야는 민족적 차원을 뛰어넘어 우주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하느님을 바라봅니다. “나는 주님, 모든 것을 만든 이다. 나는 혼자서 하늘을 펼치고 나 홀로 땅을 넓혔다.”(이사 44,24) 그 어느 누구의 도움이나 재료도 없이 홀로 세상만물을 지어내신 분이기에 그분은 단 한분이십니다. 제2이사야가 말하는 천지창조는? 고대 근동 설화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잡신들이 벌이는 싸움이나 투쟁의 결과로 얻어진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 홀로 당신의 자유의지로, 곧 말씀으로 이루신 업적이라고 선포합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0-11) 제2이사야의 창조신학에서 하느님은? 홀로 시작하시고 끝맺으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처음이며 나는 마지막이다. 나 말고 다른 신은 없다.”(이사 44,6; 묵시 1,8.17 참조)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5월호, 글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작전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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