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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69: 쿰란 공동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5-15 조회수8,242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69) 쿰란 공동체


바리사이보다 더 엄격했던 쿰란 공동체

 

 

- 이스라엘 사해 인근의 쿰란 동굴.

 

 

1세기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그의 「유다 고사(Antiquitates Iudaicae)」에서 바리사이, 사두가이, 에세네파를 당시 유다인들의 중요한 종교 집단들로 언급합니다.

 

신약 성경에는 에세네파가 직접 언급되지 않으나, 요세푸스와 필로가 이들에 대해 전해 줍니다. 그들은 바리사이나 사두가이보다 더 당시의 정치와 사회를 멀리했습니다. 그들의 기원은 마카베오 항쟁에 참여했던 “충실한 이들”(1마카 2,42, 히브리어로 ‘하시딤’)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인데, 이들은 처음에는 마카베오 집안과 함께했으나 기원전 152년에 차독 계열이 아닌 유다 마카베오의 동생 요나탄이 대사제가 되면서부터 요나탄과 시몬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그들이 이끄는 성전의 체제에 대해 반발하면서 그들과 상종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율법에 더 충실한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이들에 대해 더욱 상세하게 알게 된 것은 1947년에 사해 근처에서 쿰란 동굴이 발굴되면서부터입니다. 정확히 말한다면, 쿰란에 살고 있던 공동체가 에세네파에 속했다는 증언은 없습니다. 그러나 쿰란 발굴 결과 드러난 그들의 생활상이 에세네파에 대한 고대의 기록들과 많은 점에서 일치하기 때문에, 쿰란 공동체가 에세네파에 속했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쿰란의 발견은 신약 성경의 배경사로서뿐만 아니라 성경 본문의 전승에 대한 연구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쿰란은 사해 근처에 있는 언덕인데, 수천 년 동안 아무도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러 들어간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47년에 어떤 목동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으려고 동굴 안으로 돌을 던졌다가 항아리 소리를 듣게 되어 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두 11개의 동굴이 발굴되었고 그 안에서 많은 구약 성경 두루마리들과 그 밖의 자료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1세기의 것들로서 지금까지 알려졌던 구약 성경 사본들보다 수백 년 또는 천 년 이상 오래된 것들이기 때문에 성경의 원문을 찾으려고 하는 이들에게 매우 큰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가 보통 구약 성경의 번역 대본으로 삼는 레닌그라드 사본이 1008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보다 천 년이나 앞선 사본들이 갖는 중요성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오래된 사본들이 발견되었을 때 처음에 학자들은 이제 성경 본문에 대한 수많은 문제가 풀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고 오랜 전승 과정에서 손상된 성경의 원문을 찾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쿰란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사본들과 차이가 나는 수많은 두루마리가 발견됨으로써 성경 본문의 역사는 생각보다 더 복잡한 것이었음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문제들이 정리되기도 했지만 또 다른 문제들이 나타나고 상황이 더 복잡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쿰란에서는 성경에 속하지 않은 다른 문헌들도 여럿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예를 들어 공동체의 규칙서와 같은 것도 있어 그들의 사상과 삶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겉으로 보이는 쿰란 공동체의 모습을 본다면,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며 부정을 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정결례를 위하여 몸을 씻으러 내려가는 계단에는, 올라오는 이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난간이 있습니다. 몸을 씻어 정결해진 이들이, 내려오는 이들과 접촉하여 다시 부정을 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은 바리사이들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율법을 준수했고, 공동체의 규율을 어기는 이들에 대해서도 매우 엄한 처벌을 가했습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모습 아래에 깔려 있는 사상은 묵시문학적 역사관이었고, 그들의 삶은 종말을 앞두고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식들 사이의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온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 구분했던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들과 바리사이들 등을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보면서 그들 스스로는 빛의 자녀로서 흠 없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종말을 준비했습니다. 아울러 그들에게서는 메시아 희망도 강하게 나타납니다.

 

쿰란 공동체는 기원후 68년 로마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로마군이 다가올 때에 그들은 전쟁이 끝난 다음에 두루마리들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항아리 속에 조심스럽게 숨겨 두었으나, 공동체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기에 그 두루마리들은 20세기까지 그대로 동굴 안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바리사이와 사두가이, 그리고 에세네파 외에도 율법학자들, 열혈당원들 등이 있었으나, 신약 성경이 형성되던 시기에 가장 중요했던 종교 집단들은 이 세 집단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영향력이 컸던 것은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공생활 시기뿐만 아니라 교회가 형성된 초기에도 그리스도인들은 바리사이들과 대립해야 했습니다.

 

또한, 이 세 집단과 예수님의 관계를 본다면 일단 예수님은 사제나 귀족 계층에 속하지 않았고 사두가이들의 믿음을 공유하지 않았으며, 육신의 부활이나 종말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바리사이 또는 에세네파에 가까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쿰란 공동체나 당시의 다른 조류에 속한 이들이 기다렸던 메시아 상에 부합되는, 정해진 틀에 맞는 바로 그 메시아였던 것도 아닙니다. 근래에 나온 연구서나 아니면 영화에서는 예수님을 당시의 랍비, 열혈당원, 에세네파 등의 모습으로 그려내기도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그 어떤 특정 집단과 연결짓지 않습니다. 이는 예수님 안에는 그 모든 범주를 깨뜨리는 새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새로움이 많은 이들이 나중에는 그분을 버리고 떠나가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6년 5월 15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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