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해에 읽는 구약성경] 사마리아인 이스라엘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라는 곳이 있다. 한 나라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나라다. 이스라엘 시민권이 없는 아랍인이 모여 사는 곳으로, 대표적으로 성경에 자주 나오는 스켐(창세 12,6)은 이 기구에 속한다. 스켐에는 팔레스타인 아랍인과 떨어져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사마리아인 공동체가 있다. 그리짐 산기슭이 그들의 보금자리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면 유다인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인데, 사마리아인이 그곳에 산다고 하니 좀 의아할 수 있겠다. 자세한 연유야 어떻든, 사마리아인은 혈통적으로 유다인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마리아인은 구약 시대부터 그리짐 산을 지키며 살았다. 아시리아 지배기 앞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질곡을 다양하게 버티어가면서 말이다. 신약시대에도 사마리아인은 그리짐 산과 스켐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예수님의 비유(루카 10,29-37)에 자비로운 이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인의 성소 그리짐 산 사마리아는 히브리어로 ‘쇼므론’이라 한다. 이 지명이 성경에 맨 처음 언급된 곳은 1열왕 13,32이다. 16,24에 따르면, 북왕국 임금 오므리가 세메르라는 사람에게서 사들여 요새 성읍으로 만들었다. 그 뒤 아시리아가 북왕국을 정복할 때(기원전 722년)까지 수도 구실을 했다. 사마리아 곧 ‘쇼므론’이라는 말의 어근은 ‘지키다’라는 뜻을 가진 ‘샤마르’로 본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스스로를 ‘율법을 지키는 이’라고 풀이해 왔다. 부분적으로나마 히브리 혈통을 지닌 이들이니(다음 단락 참조), 유다교의 한 분파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하지만 모세오경만을 경전으로 인정하기에, 예언서와 성문서까지 모두 받아들이는 정통 유다교와는 구분된다. 사마리아인은 자기네 모세오경이 모세 시대에 전수받은 바로 그 토라라고 주장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오자마자 ‘아비샤 벤 피느하스’(아론의 증손자)라는 사람이 원본 그대로 필사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모세오경은 정통 모세오경과 비슷하지만, 성소가 다르게 나온다는 것이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예루살렘 성전 대신 그리짐 산을 성소로 본다. 그 때문에 사마리아인은 예로부터 그리짐 산기슭에 모여 살았다. 십계명에도 그리짐 산에 제단을 만들라는 명령을 따로 덧붙여 그 중요성을 강조했을 정도다. 그리짐 산은 ‘시나이 산 계약에 따른 축복’을 선포하던 곳이니,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맞다(신명 11,29; 28장 참조. 그리짐 산 맞은편 에발 산에서는 ‘계약 파기에 따른 저주’를 선포했다). 그렇지만 예언서나 성문서에 따르면 하느님의 도성은 예루살렘이었기에(시편 48,2-3; 이사 52,1 등 참조), 전체 역사로 보면 그리짐 산은 중심 성소가 될 수 없다. 이처럼 경전과 성소를 보는 시선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바빌론 유배가 끝나고 유다인들이 돌아왔을 때 왜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 성전 건설을 방해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에즈 4,4-5.24). 신약 시대에도 사마리아인들은 그 입장을 고수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들어가셨을 때 그들이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루카 9,53). - 그리짐 산과 에발 산. 사마리아인의 기원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에프라임과 므나쎄 지파의 직계라고 주장한다. 요셉의 후손인 이들 지파가 사마리아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마리아는 아시리아가 그곳을 정복한 뒤 범위가 확장되어 이즈르엘 평야 아래부터 아얄론 골짜기에 이르는 지역을 망라하게 되었다. 사마리아의 북쪽 지방은 본디 므나쎄 영토였지만, 전에는 에프라임이라 불리던 곳도 사마리아 안에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사마리아인이 유다인과 분리된 기원을 설명하는 설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아시리아 제국이 펼친 민족 정체성의 말살 정책이다. 북왕국의 히브리인 정체성을 없애려고, 수도 사마리아에서 원주민들을 유배한 뒤 이방인들을 그곳으로 이주시켰다(2열왕 17,24-41). 피정복민을 정복자의 땅으로 유배하는 데는 여러 목적이 있었다. 일단 고향과 연을 끊게 만들어 정체성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정복자의 땅에 정착시켜, 주군이 된 나라의 경제와 군사력에 기여하게 하는 것이었다. 구약시대부터 유다인이 사마리아인을 천시해 온 것(요한 4,9 참조)도 이때 이방인과 피가 섞였다고 본 탓이다. 하지만 아시리아의 사르곤 임금의 비문을 보면 당시 이만 칠천여 명을 유배했다고 하니, 주민 전체는 아니다. 그러니 에프라임과 므나쎄 지파의 직계라는 사마리아인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 이에 반해 유다인은, 사마리아인이 이교도의 후손이라는 생각을 견지해 왔다(2열왕 17,24-41; 에즈 4,1-2 참조). 그들이 준수하는 율법도 이교도들을 가르친 사제가 세운 것이라고 믿었다(「유다 고대사」, 9.290 참조). 사마리아 전승은 사무엘의 스승인 엘리 사제(1사무 2장 참조) 때문에 그들이 유다교와 분리되었다고도 전한다. 엘 리가 계약 궤를 훔쳐 분파를 만든 탓에 사마리아인과 유다인이 나뉘었다는 주장이다. 사마리아 공동체는 계약 궤가 본디 그리짐 산 성소에 모셔져 있었고 엘리는 대사제가 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고 본다. 엘아자르 가문이 아니라, 이타마르 가문에 속한 이였다고 믿기 때문이다(아론 사제의 아들 엘아자르가 레위인들의 수장이라고 기록한 민수 3,32 참조). 그러한 그가 계약 궤를 훔쳐 실로에 갖다 놓은 탓에 지금의 유다교가 싹트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유다교는 엘리의 이단 행위로 말미암아 탄생한 분파에 지나지 않으며, 사마리아인이야말로 진정한 이스라엘의 신앙을 잇는다는 뜻이다. 역사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무척 흥미로운 전승이다. 사마리아인의 비유 유다인이 옳건 사마리아인이 옳건 오래 쌓인 갈등은 한 번에 치유되기 힘들다. 이런 갈등에 관계없이 우리가 사마리아인에게 흥미를 갖는 이유는 예수님의 비유 때문이다. 그 배경은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는 길목으로 나타난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이라서, 그곳에 갈 때는 언제나 ‘올라간다’는 표현을 쓴다(떠날 때는 ‘내려간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예리코는 해저 280미터이고 예루살렘은 해발 750미터 정도에 자리잡고 있으니, 지형적으로도 적당한 표현이다. 예루살렘과 예리코를 잇는 길은 예로부터 ‘마알레 아두밈’ 곧 ‘붉은 오르막’이라 불렀다. 구릉진 광야 길이라 강도들이 숨어서 길손을 공격하곤 했기에, ‘피에 물든 오르막’이라는 뜻으로도 풀이한다. 인적이 드문 광야라 봉변을 당해도 구해줄 사람이 없으니 강도가 들끓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에도 강도를 당해 초주검이 된 사람이 나온다. 맨 처음 그를 발견한 이는 사제였는데, 보자마자 길 반대편으로 가버리고 만다. 그가 그냥 지나친 것은 쓰러진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한 탓이다. 사제는 율법적으로 가족 말고는 시체를 만질 수 없었다(레위 21,1-4 참조). 하지만 유다교는 예로부터 인명 구조를 중히 여겼기에, 주검을 만지지 말라는 율법도 생명을 구하는 일 앞에서는 효력이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죽었다는 확증도 아직 없다. 사제는 마침 그 길을 ‘내려가고’ 있었으니(31절), 성전 직무를 끝낸 뒤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을 것이다. 당시 사제들은 2주 동안 일했다(루카 1,8.23참조). 다음 성전 복무 때까지 정결례를 가질 시간도 충분했다. 그러니 길손이 저세상 사람이었다 해도, 그를 묻어주었다면 더 없이 큰 자비가 되었을 것이다. 고대인들은 무덤에 제대로 묻히지 못하면 영혼이 지하에서 안식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다음에는 레위인이 지나가는데, 레위인은 아론의 후손이 아니므로 사제가 아니었다. 레위인은 희생 제물의 봉헌이나 기도, 전례, 성가 진행 등을 돕던 이들이다. 그런데 그냥 지나간다. 그 뒤 사마리아인이 오더니, 길손을 불쌍히 여긴다. 포도주로 상처를 닦고, 올리브유로 진정시켜 주었다. 또 상처가 아물도록 잘 묶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근처 여관으로 옮겨 밤새 돌본 뒤, 여관 주인에게 맡기며 두 데나리온을 미리 지불했다. 당시 두 데나리온은 이틀치 임금에 해당하는 돈이다(마태 20,2 참조). 그리고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여관 주인도 길손을 내쫓지 않고 끝까지 돌보아준 듯하다. 사제와 레위인은 성전에서 일하면서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런데 유다인이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은 길손을 도와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비유는 세상이 늘 기대하거나 예상한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준다. 생판 남이라 여긴 이도 참이웃이 되어줄 수 있으며 우리도 그런 이웃이 되어야 함을 가르친다. 또한 스스로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이웃의 아픔은 외면한 적이 없는지 돌아보게 한다. 사실 사마리아인들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던 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적대적 태도를 취했다(루카 9,52). 다른 유다인이 지나갔어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사마리아인들도 본성적으로 자비심이 크거나 이타적인 이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 비유를 통해 우리는 범인(凡人)이나 사회적으로 냉대받는 이라도 고귀한 일을 할 수 있고, 바리사이처럼 스스로를 고귀하게 여기는 이(루카 18,11 참조)라도 행동이 비천할 수 있음을 본다. 잠언 6,1에는 ‘이웃’이라는 말과 ‘낯선 이’가 동의어로 나타난다. 곧, 이웃이 된다는 것은 혈연이나 거리가 가까운 데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라 낯선 이에게 보여주는 행동에서도 드러남을 암시한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도 있지만, 악은 참 평범한 곳에 숨어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비극에 입 다물고 제 할 일만 하는 것도 평범 속에 숨은 악이다. 그렇지만 비유 속 사마리아인처럼 개인이 행하는 자비가 모이고 모이면, 이 문제에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자비의 특별희년을 지내는 올해, 우리 모두 자비심을 잃지 않는 이웃이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겠다. * 김명숙 소피아 -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6년 5월호,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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