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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자비의 해에 읽는 구약성경: 엘리야와 사렙타 과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18 조회수8,519 추천수1

[자비의 해에 읽는 구약성경] 엘리야와 사렙타 과부

 

 

엘리야는 기원전 9세기 북왕국에서 활동했다. 이름은 ‘야훼는 나의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야훼 신앙의 진수를 보여준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는 십계명을 받은 모세에 견주어질 만큼 그 중요성이 부각된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참모습을 보여주신 변모 때도, 엘리야는 모세와 그 자리를 함께했다(마태 17,3).

 

엘리야는 하느님과 바알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백성이 참신앙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었고(1열왕 18장 참조), 이방 땅 사렙타에서는 과부와 그 아들에게 삶을 되찾아주었다(1열왕 17,8-24).

 

성경은 엘리야를 길앗의 티스베 사람으로 소개한다(1열왕 17,1). 길앗은 요르단 강 건너 동쪽 지방인데, 현재는 요르단 영토다. 엘리야 시대에 북왕국의 임금은 아합이었다. 아합은 종교적으로 혹평을 받지만, 정치나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는 이스라엘 북쪽의 페니키아와 유대관계를 증진하려고 시돈 공주 이제벨과 정략결혼을 하였다(1열왕 16,31). 페니키아는 현재 레바논의 해안 지역에 해당하는데, 그 중심은 티로와 시돈이었다. 페니키아인들은 고대 근동에서 무역으로 이름을 떨쳤고(에제 27,3 참조), 호메로스의 장편 서사시 「오디세이」(15.415)도 이들을 바다의 상인으로 묘사한다.

 

기원전 10세기 솔로몬은 성전을 지을 때 티로의 임금 히람의 도움을 받았다(1열왕 5,15-32). 아합도 경제적 이익을 위해 페니키아 출신 이제벨을 아내로 맞지만 그 결혼에는 바알과 아세라 신앙이 따라 들어오는 부작용이 있었다.

 

아합은 아내의 영향을 받아 야훼 신앙에 소홀해지지만(1열왕 16,31-33), 그렇다고 완전히 버린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보면, 아하즈야(1열왕 22,52)는 ‘야훼께서 붙드시다.’를, 요람(2열왕 3,1)은 ‘야훼께서 들어 높이시다.’를 뜻하기 때문이다.

 

곧, 아합은 하나의 종교만 택하기보다 페니키아와 이스라엘의 두 종교를 모두 만족시키는 혼합주의를 추구한 듯하다. 솔로몬이 이방인인 아내들의 치마폭에 싸여 우상숭배로 나라의 분단을 초래하였기에(1열왕 11,7-8 참조), 엘리야는 아합 임금에 대해서도 같은 점을 걱정했던 것이다.

 

이제벨이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게 된 것은(1열왕 18,13) 이스라엘의 신앙 자체를 탄압한 것이 아니었다. 자기 종교인 바알 · 아세라를 배척하는 데 대한 일종의 복수였던 것이다.

 

가나안인들이 비의 신과 풍요의 여신으로 섬긴 바알과 아세라는 북왕국 백성에게 큰 유혹이었다. 다다익선이었을 테니, 백성은 하느님뿐 아니라 이 신들도 섬겨주면 힘이 갑절이 되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주님을 다른 신과 함께 섬기는 행위는 그분의 권위를 우상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므로, 그 거룩하신 이름에 해가 된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대가뭄을 선고하셨다(1열왕 17,1). 가뭄을 내리신 뒤 해갈해 주심으로써, 삼라만상의 조물주가 당신이심을 증명하시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엘리야는 자신을 통해 선포된 재앙에 분노했을 아합 내외를 피해 몸을 숨겨야 했으므로 크릿 시냇가로 갔다(1열왕 17,3-7). 크릿 시내는 ‘와디(건곡)’여서, 우기에만 물이 흐르고 보통 때는 말라있다. 당시에는 가뭄이 들어, 우기에도 물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하느님께서는 까마귀에게 빵과 고기를 날라주게 하시어, 엘리야가 평소보다 음식을 잘 먹게 하셨다(고기는 명절에만 맛보는 특식이었다). 크릿 시내가 완전히 마른 뒤에는 그를 사렙타로 가게 하셨다. 사렙타는 티로와 시돈 사이에 자리 잡은 도시였는데, 오바드야서는 그곳을 가나안의 맨 끝으로 언급하고 있다(1,20).

 

 

사렙타의 과부

 

이제벨의 고향이 페니키아이지만, 엘리야는 그 지역 자체에 적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사렙타의 과부를 도와준 데서 보듯 말이다. 엘리야가 찾아간 과부는 하느님을 섬기는 이가 아니었는데도(1열왕 17,12 참조), 엘리야에게 극진히 대했다. 곧, 삶의 방식이 달라도 이를 존중할 줄 아는 여인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서, 물은 줄 수 있어도 빵은 먹고 죽을 것밖에 없다며 털어놓는다.

 

당시 과부는 무엇보다도 불쌍한 계층이었다. 물론 과부라고 하여 모두가 가난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윗의 아내가 된 아비가엘은 부유한 과부였다(1사무 25,42). 유딧도 남편이 상당한 재산을 남겨준 미망인으로 소개된다(유딧 8,7). 하지만 그렇지 못한 과부가 대부분이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룻 1,8 참조). 그렇다고 친정에 돌아가기가 어디 쉬운가?

 

그래서 모세오경은 과부를 비롯한 약자층을 위해 세 해마다 소출의 십분의 일을 나누라고 명한다(신명 14,28-29). 과부는 이삭줍기도 허락받았다(신명 24,19; 룻 2,2 참조). 과부를 도와주라는 독려가 많은 것은 그만큼 그들을 학대하기가 쉽고, 또 그런 사례도 많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느님을 과부들의 보호자로 찬양한다(시편 68,6 등).

 

특히 엘리야의 하느님이 ‘살아 계시는’ 한, 자기와 아들은 한 줌 빵을 먹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과부의 말(1열왕 17,12)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 모자를 죽게 두시겠는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암시해주는 듯하다.

 

엘리야는 과부를 도와주기에 앞서 자기를 위해 빵을 만들어 오라고 청한다(13절).엘리야가 청한 그 한 줌 빵은 과부에게 목숨과도 같은 식량이었으므로, 그가 엘리야를 신뢰하지 않았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과부에게 명령하시어 먹을 걸 주도록 준비해 놓으셨다는 9절은, 그런 자비심과 도량을 가진 여인으로 물색해 놓으셨다는 뜻이다.

 

당시 사람들은 나라마다 주신(主神)이 다르다고 믿었다. 그 한 예로, 모압은 크모스 신(민수 21,29)이, 암몬은 밀콤 신(예레 49,1)이 다스린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사렙타 과부를 돕게 하신 것은, 그분의 권능이 이스라엘 영토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정적 예가 된다. 그 과부는 ‘먹고 죽을 작정이었던’ 밀가루 한 줌을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베푼 뒤, 아들과 함께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전 재산인 렙톤 두 닢을 성전 헌금함에 넣은 과부(마르 12,41-44)와 무척 흡사하다.

 

성직을 맡은 사제에게 양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모세오경의 율법도 떠올리게 한다. 하느님께서는 백성이 제물을 봉헌하면 일정 부분을 사제의 몫으로 정하시어(민수 18,8-24; 신명 18,1-8; 느헤 10,38 등 참조), 당신께서 사제들을 돌보신다는 걸 알게 하셨다. 상속재산이 없는 사제들(민수 18,20 등 참조)에게 복을 베풀면, 그복은 자신들에게 되돌아온다(사제 축복문, 민수 6,23-27 참조). 그런데 사렙타 과부는 이런 율법도 모르고 그런 계산도 없었는데도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를 정성껏 대접했던 것이다.

 

 

과부의 아들을 죽음에서 일으키다

 

이 일이 있은 뒤 과부의 아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남편을 잃었는데, 아들마저 잃으니 그 절망이 대단했을 것이다. 과부는 엘리야에게 왜 자기 집에 와서는 죄를 들추고 아이를 죽게 만들었는지 따진다(1열왕 17,18). 엘리야가 그곳에 머문 것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모자람이 부각되어 하느님께서 그 벌로 아들을 데려가셨다는 책망이다.

 

예로부터 길손을 대접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 환대를 악으로 갚았다! 그러자 엘리야는 아이를 달라고 하여 옥상 방에 누인다. 그리고 과부의 환대를 기억하시어 아이 목숨을 돌려주시라고 하느님께 청한다.

 

엘리야는 아이 위에 자기 몸을 펼쳤는데, 이는 자기 생명력을 아이에게 전해준다는 하나의 상징 행위였다. 하느님께서는 엘리야의 청을 들으시고, 아이를 살아나게 하셨다. 이 기적은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일으키시어 당신 영광을 드러내시듯(요한 11,4.38-44) 하느님께서 페니키아에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계기가 된다.

 

엘리야가 참으로 하느님의 사람임을 알았다는 과부의 고백(1열왕 17,24)은 엘리야의 말이 있기 전에는 가뭄이 해갈되지 않으리라는 1절의 예고도 참임을 확인해준다.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은 사무엘(1사무 9,6), 엘리사(2열왕 4,7), 유다 출신의 한 예언자(1열왕 13,1), 그리고 모세(신명 33,1)에게만 붙여진 것이다. 이 호칭이 암시해 주듯, 엘리야는 하느님께서 주신 힘으로 기적도 일으킬 수 있는 이이다. 과부가 엘리야를 비난했던 것도 그가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으므로, 자기의 숨은 죄까지 들추어 보시고 아이에게 벌을 내리신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엘리야는 아이를 어머니에게 돌려주어, 그 여인의 두려움을 불식시켜 주었다.

 

 

신약성경에 이은 기적

 

예수님께서 등장하시기 전까지 성경에서 죽은 이가 되살아난 예는 사렙타 과부의 아들을 포함해 손에 꼽을 정도였다(2열왕 13,21 참조). 그만큼 하느님께서 엘리야에게 부여하신 힘과 권위가 남달랐음을 암시해 준다. 이 기적은 후대에도 깊은 인상을 남겨,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사렙타 과부의 예를 인용하셨다(루카 4,26).

 

신약 시대에는 이런 기적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죽음의 세력을 꺾을 하느님 나라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인 마을에서는 예수님께서 과부의 외아들을 소생시키셨다(루카 7,11-17). 특히 루카 복음은 의도적으로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15절)는 표현을 써서 엘리야가 아들을 그 어머니에게 돌려준 1열왕 17,23을 비슷하게 되풀이한다. 군중은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16절)며 감탄하는데, 이 감탄은 엘리야만큼 위대한 예언자가 등장했다는 칭송이다.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는 마지막에 불마차로 승천해(2열왕 2,1-18), 에녹(창세 5,24)과 성모님과 더불어 죽음 없이 하느님 곁으로 간 한 사람이 되었다. 말라키는 주님의 날이 오기 전 엘리야가 미리 와서 그 길을 준비하리라고 예고했으며(3,23-24), 신약성경(마태 11,14; 17,12 등)은 요한 세례자가 바로 그 엘리야라고 밝힌다.

 

사렙타 과부의 예에서 보듯, 복은 우연히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도 구제받지 못한 기근에서 페니키아 과부가 구제받은 것은, 자신이 가진 하나라도 나누려는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베풀었기에 더 큰 것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 김명숙 소피아 -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6년 6월호,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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