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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바오로 영성의 주제들: 사도 바오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8-13 조회수6,843 추천수1

[바오로 영성의 주제들] ‘사도’ 바오로

 

 

“우리는 삶의 여러 분야에서 우리 자신보다 전문가들을 더 신뢰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관련한 것에 대해서도 믿을 만하고 전문적인 누군가를 필요로 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7월호에서 기도하는 바오로 사도를 통해 믿는 이는 하느님 앞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보았습니다. 8월호에서는 ‘사도’ 바오로라는 주제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파견된 곳에서 어떤 자세로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하는지 사도생활의 전문가인 바오로에게서 배웁니다.

 

 

사도의 정체성, 혼인 중개자

 

신약성경에서 ‘사도(아포스톨로스)’라는 용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권한이 주어진 사람(1코린 1,1; 로마 1,1)이고, 또 하나는 파견자 · 교회의 대표(2코린 8,23)를 가리킵니다. 바오로는 ‘사도’라는 말을 이 두 가지 의미로 모두 사용합니다.

 

바오로는 교회를 ‘하느님의 집’(1티모 3,15)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집에서 아버지로서 바오로의 소명은 먼저 복음을 통해 하느님 자녀의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고, 이어서 자녀들이 그리스도와 누리는 충만한 친교를 통해 아버지를 찬미하도록 신앙교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공동체가 이 길을 벗어날 때는 타이르고 권고했습니다.

 

바오로가 여러 공동체에 봉사할 때 사도로서 지녔던 일관된 정신을 심오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내용이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 나옵니다.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자에게, 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그분과 약혼시켰습니다”(11,2).

 

바오로는 여기에서 혼인의 상징을 사용하는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장차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그리스도와 약혼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코린토 공동체의 충실함과 거룩함에 자신이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은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미래 신부, 곧 코린토 공동체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히브리의 혼인관습이 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자녀가 혼인할 나이가 되면, 신랑 아버지가 미래 신붓감이 될 여성의 아버지에게 직접 접촉해서 혼인에 관련된 것을 협상합니다. 신부의 부모가 동의하면 신랑과 신부의 약혼을 결정하고, 약혼 기간이 끝나면 혼인하게 됩니다.

 

신부가 될 여성의 아버지는 언제인지 모르지만, 정식으로 혼례식을 할 때까지 미래의 신부를 잘 보살피고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약혼한 남자와 여자는 이미 약혼 시기부터 서로에게 충실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혼인하여 한 집에서 함께 살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충실히 지켜야 합니다.

 

바오로는 교회 공동체는 신랑인 그리스도와 맺는 혼인의 친교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분에게 충실히 머물러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체험한 사람, 바오로 사도만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공동체가 그렇게 살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필리 1,21; 갈라 2,20 참조).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시는 날, 흠 없는 신부인 교회 공동체를 그리스도에게 바칠 것이고, 공동체는 그리스도와 흠 없는 친교의 포옹 안에서 그분과 결합할 것입니다. 그의 임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 중개자로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순결한 처녀로 한 남자에게, 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공동체를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스스로 선택한 가난

 

바오로 사도의 생활 전반에서 특히 제 시선을 끄는 것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사도적 가난입니다. 바오로는 복음 선포의 자유와 공동체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천막을 만들면서 스스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을 사도 생활의 원칙으로 삼았습니다(사도 18,1-3; 1코린 4,12; 9,12 참조). 아마도 이런 자세는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함께 생계에 필요한 일을 가지도록 훈련한 랍비 교육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바오로 시대에 천막을 만드는 일은 아주 힘든 육체노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이 원칙을 지키면서 어떤 환경에서든 ‘만족’(「200주년 신약성서」에서는 ‘자족’으로 번역.)하는 것을 배웠습니다(필리 4,11 참조).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 ‘자족’이라는 말이 외적인 것을 필요로 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그것이 이상적인 삶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이 말을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바오로는 이런 자족의 삶을 계속해서 “배웠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시제는 바오로가 이 가난 체험을 온 생애를 통하여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끊임없이 배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바오로가 사도직과 육체노동을 병행하면서 겪은 인생 체험은 현재 가진 것에 자족하는 자세를 배우도록 스스로에게 계속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비록 자족하는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그렇듯이 바오로에게도 늘 자연스러웠다거나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겠지만, 이런 자세는 결국 ‘사도’ 바오로라는 인물의 근본적인 특성이 되었습니다.

 

바오로가 이런 자세를 지니고 사는 이유는 다음 구절에서 명확히 밝혀집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 사도의 영혼 안에 있는 이 자족의 정신은 성령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어떤 상황과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바오로의 영혼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의 마음에 상응합니다.

 

‘자족’은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으며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지니는 덕목입니다. 바오로에게도 사도직을 위해 물질적으로 많은 것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근심하며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늘의 새들을 먹이시고 들에 핀 나리꽃마저도 입히시는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맡깁니다(마태 6,25-34 참조).

 

바오로는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공동체를 이렇게 격려합니다.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필리 4,19). 바오로의 이 사도적 가난 체험은 그와 그가 창립한 공동체들이 공동체의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생활과 고통

 

바오로의 복음 선포의 핵심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라.’입니다. 바오로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마치 영원히 고통받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마음을 잠깐 보여주는 창과 같습니다”(영국의 성서학자 윌리엄 버클레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절이자 이민족의 사도로 바오로를 선택하시어 십자가에 드러난 당신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바오로는 이 선택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고통과 영광의 모범을 본받는 것이 자신의 부르심에서 필연적인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바오로는 고소를 당하고 박해를 받으면서까지 주님을 증언하고 고백하도록 선택되었습니다.

 

바오로를 부르신 주님께서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주겠다.”(사도 9,16)라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선택과 부르신 분을 본받음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민족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르심 초기부터 알았을 것입니다.

 

바오로가 사도 생활에서 체험한 고통은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통과는 다릅니다. 바오로의 고통에는 그리스도처럼 죄에 대한 용서라는 바탕이 없습니다. 따라서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 고통받지 않습니다.

 

바오로의 고통은 그의 고통을 통해서 이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진보하게 하는 도구가 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오로의 고통은 그리스도의 고통의 모자란 부분을 채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숱한 사도직의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의 힘이 자신의 나약함 안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나약함을 자랑하기조차 합니다.

 

 

하느님의 뜻

 

바오로는 사도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생애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그의 부르심(2코린 1,1; 콜로 1,1; 에페 1,1; 2티모 1,1)이나 그 뒤 계속된 사도직(로마 1,10; 15,32 참조)에서 바오로의 삶을 조각하는 핵심입니다.

 

바오로도 우리처럼 자신의 갈망과 하느님의 뜻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오로가 바친 모든 기도는 그가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영적 열매를 나누어주고 신앙 안에서 함께 힘을 얻고자 로마에 가기를 기도하지만(로마 1,9-10 참조), 죄수로서 죽으려고 로마에 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부하는 동족 유다인들의 구원을 위해 자기 목숨을 걸고 기도하지만(로마 9,3; 10,1 참조), 죽는 순간까지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족의 고발로 죽게 됩니다.

 

예루살렘 공동체가 자신들에게 맡겨진 이방인 선교의 열매인 모금을 잘 받아주기를 기도했으나(로마 15,30-33 참조)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오로는 미래를 계획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하느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도로 사는 것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을 간직했습니다.

 

 

사도의 내적인 헌신

 

세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모셔다드리는 사람’입니다. 바오로가 ‘사도’로서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 이유는 그가 여러 교회 공동체를 세웠고, 많은 서간을 집필하는 등 외적으로 위대한 일을 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내적으로 살아있는 헌신을 충실하게 봉헌하는 것이 사도 생활의 핵심임을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외적인 열매는 모두 여기에서 흘러나옵니다.

 

하느님은 사도 생활에서 늘 바오로의 힘을 북돋워주셨듯이 그가 전하는 복음으로 우리의 힘을 북돋워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나를 굳세게 해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1티모 1,12).

 

* 임숙희 레지나 -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대표이며, 대전가톨릭대학교 부설 혼인과 가정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6년 8월호, 글 임숙희 · 그림 서소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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