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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지도자들: 긍정적이며 책임감이 강한 지도자 여호수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8-13 조회수8,627 추천수1

[성경 속의 지도자들] 긍정적이며 책임감이 강한 지도자 여호수아

 

 

모세가 하느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이끌었다면, 여호수아는 그런 모세를 보필하면서 지도자로 성장해 간다. 모세를 섬기기 시작한 그에게 먼저 주어진 일은 가나안 지방을 정찰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정복 가능성을 낮게 본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감이 넘치고 긍정적이며 강한 전투적인 태도로 주변 사람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국가의 명운을 건 아말렉과 아이, 그리고 기브온에서의 전투를 용감하게 이끌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이스라엘을 이끌게 된 가장 큰 덕목은 강한 책임감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가 진영으로 돌아온 뒤에도,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장막을 혼자 지키는 그의 모습은 묵묵히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는 태도다(탈출 33,11 참조).

 

흔히 ‘지도자’ 하면 뛰어난 지능이나 창조적 영감, 멀리 내다보는 혜안과 같은 비범한 덕목을 생각하지만, 실제로 조직의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여호수아가 보여준 과묵한 임무 수행 의지다.

 

재능과 실력이 개인적인 영역에서만 작용한다면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 없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어쩌면 「삼국지」의 장비나 조자룡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여호수아는 가장 위험한 적진으로 몰래 잠입하는 척후병 노릇도 잘 해낸다.

 

이러한 모습은 개인적인 몸보신에 급급한 사람이나 ‘가만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하는 식으로 언제나 안일과 이익만을 챙기는 데 관심을 두는 이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개혁형 지도자의 모습이다.

 

 

긍정적인 태도

 

두 번째 우리가 배워야 할 여호수아의 강점은 긍정적 태도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차라리 이집트나 광야에서 죽는 게 낫다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난리칠 때 홀로 ‘그들은 우리 밥이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냐?’(민수 14,9 참조)며 여론을 뒤집는다.

 

물론 근거나 논리가 없는 긍정적 태도는 큰 참사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하면 된다.’와 같은 긍정적 정신을 갖고 있지 않는 지도자는 곤경에 빠져있거나 정체된 구성원들을 새로운 곳으로 인도해서 발전시킬 수 없다.

 

도덕적으로 아무리 성숙해도, 언제나 부정적으로 보고 주변 사람들의 기를 꺾으며 주저앉게 만드는 이들은 집단을 몰락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필자가 만난 존경받는 경제인이나 정치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아무리 힘들어도 치고 나가는 긍정적 태도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장점을 찾아내어 포기하지 않고 추진하는 긍정적인 태도 말이다.

 

 

언제나 소통하는 능력

 

세 번째는 소통의 능력이다. 모세가 비교적 소심하고 조금 내향적인 성품을 지닌 반면에, 여호수아는 민심이 어지러운 상황에도 불쑥 나와 수습하는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모두가 좌절하는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민수 14,9) 하고 외쳐 백성의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힌다.

 

자신에게 여론이 좋지 않으면 숨다가 다시 좋은 상황이 오면 그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지도자가 있다. 나쁜 일이 있으면 뒤로 숨고 절대로 앞에 나서지 않는다. 자신의 부하나 다른 이들을 내보내 자기 대신 집중포화를 받게 한다. 한마디로 책임을 떠맡기 싫어한다.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과 그 신하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그 부하들, 그리고 최근 국가가 곤경과 재난에 빠졌을 때 대통령들의 모습이다. 이런 겁 많고 치사한 지도자를 누가 존경하고 따르겠는가?

 

하지만 여호수아는 정반대로 민족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있을 때에도, 심지어는 자기가 벌인 전쟁에서 졌을 때도 책임 전가하지 않고 끝까지 백성을 격려하며 소통을 멈추지 않았다.

 

 

겸손한 자세

 

네 번째로는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자신을 신적인 존재와 동일시하는 이집트의 파라오 임금과 달리 자신은 어디까지나 주님의 명령을 따르고 순종하는 하인에 불과하다는 그의 겸손한 자세다(여호 24장 참조).

 

사람들은 보통 어렵고 힘들 때는 겸손하고 신중하지만 잘 나가고 성공해서 주변으로부터 칭찬과 우러름까지 받을 때는 우쭐해서 교만에 빠지기 쉽다. 스스로 매우 특별하고 잘났기 때문에 잘 풀렸다고 생각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나 실패한 사람들은 열등하고 무능해서 그런 것이라고 단순화한다.

 

여호수아는 자기의 성공과 실패와 상관없이 먼저 하느님을 섬기고, 지도자인 자기를 우상화하지 말고 하느님을 경배하라고 강조했다는 점에서 다른 민족의 임금들과 명백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성경」에는 여호수아의 인간적인 약점도 기록되어 있다. 예컨대, 아이 성 공략 때 신중하지 못하고 자만심에 빠져 실패하고(여호 7장 참조), 기브온 주민에게 속아 땅을 보존하게 함으로써 두고두고 괴롭힘을 받게 되는 장면(여호 9장 참조) 등이다.

 

 

하느님께 사랑받으려고 애쓰는 지도자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록한 「성경」에서 현대의 평화주의자들 눈에는 여호수아 등 이스라엘 영웅들이 타민족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장면들이 이해되지 못할 수도 있다. 오직 이스라엘 민족만이 선택받았다고 강조하는 태도 또한 받아들이기 힘든 대목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폐쇄적인 유다주의를 넘어 이교도와 이민족까지 아우르는 것과는 상반된 대목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들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냈으며 지금까지도 반인권적인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아프고 힘든 방식으로 도구가 된’ 민족일 뿐이다. ‘저희를 하느님의 도구로 써주소서.’ 하는 기도가 바로 참뜻이다.

 

예수(Jesus)와 여호수아(Joshua) 이름이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예수님은 하느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초월적 인도자로, 여호수아는 이민족에 대항해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는 세속적 지도자로 대비된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인 동시에 하느님 그 자체시라면, 여호수아는 하느님께 사랑받는 종인 셈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역사에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무수히 많은 우리의 전쟁 영웅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 이나미 리드비나 - 심리분석 연구원. 한국 융 연구원 지도 분석가이며 서울대학교 외래교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성서를 심리적으로 풀어본 슬픔이 멈추는 시간」, 「성경에서 사람을 만나다」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6년 8월호, 이나미 리드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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