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19)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마태 17,9)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까닭은 - 구약에서 하느님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인물로 그려진 엘리야 예언자는 죽음을 맞지 않고 하늘로 들어 올려진 인물로 기록돼 있다. 그림은 폰 카롤스펠트 작 ‘승천하는 엘리야’. 출처=「아름다운 성경」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 이후에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예수님의 이런 표현을 ‘함구령’이라고 부릅니다.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본 것을 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당부는 악령들에게 내렸던 명령과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령하시고(마르 1,25)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복음서는 기록합니다.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1,34). 예수님의 함구령은 바로 그의 정체성과 관련돼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표현하는 영광스러운 변모 역시 예수님의 정체성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표현과 함께 사용되는 것은 ‘메시아의 비밀’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셨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여전히 토론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완벽한 해결책을 찾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의견 중에 적절해 보이는 것은 예수님의 사명과 함께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위한 예수님의 삶은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납니다. 그렇기에 죽음과 부활은 계시의 절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서도 표현돼 있는 것처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메시아의 비밀을 지키라는 것은 이때가 되어서야 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 사람들이 스스로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사실을 말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변모 이후에 전해주는 내용은 ‘엘리야 재림에 대한 논쟁’입니다. 루카 복음은 이 내용을 전하지 않습니다. 율법 학자들이 말하는,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내용은 말라키서 3장 23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또한 집회서에 기록된 엘리야에 대한 표현에서도 연관된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엘리야는)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집회 48,10). 구약 성경에서 엘리야는 죽음을 맞지 않고 하늘로 들어 올려진 인물로 기록됩니다(2열왕 2,11). 아마도 이런 사실에서 사람들은 그가 다시 오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하면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제멋대로 다뤘다고 이야기합니다. 복음서는 엘리야의 이미지를 세례자 요한과 비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태오 복음은 그것을 확실하게 표현합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마태 17,13). 엘리야 예언자는 구약 성경에서 종말에 올,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종말을 미리 알리는 인물로 소개됩니다. 구약 성경과 복음서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엘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복음서는 이러한 엘리야 예언자의 모습을 세례자 요한을 통해 발견합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먼저, 예수님께서 시작하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의 전통을 많이 전해주는 마태오 복음은 이미 공생활 초기에 예수님의 입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표현한 바 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1,14). [평화신문, 2016년 10월 16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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