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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신약 여행3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마르 12,9)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01 조회수5,382 추천수1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3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마르 12,9)


포도밭 비유에 담긴 하느님 구원 역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후에 전해지는 비유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중에 공관 복음서에 공통으로 담긴 비유 중 하나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다른 비유에 비해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특별히 ‘알레고리’라고 부릅니다. 알레고리는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다른 요소들을 역사적인 사실과 연결할 수 있는 비유를 일컫는 표현입니다.

 

이 비유는 한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포도밭을 만들고 울타리를 치고 포도확을 파고 탑을 세웁니다. 짧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 포도밭의 풍경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에 표현된 내용은 이사야서 5장 2절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미 비유의 시작에서 청중은 이것이 무엇과 관련된 비유인지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부터 포도밭은 하느님의 백성을, 하느님을 믿는 이들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상징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포도밭을 일군 사람은 하느님을, 포도밭은 하느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더 정확하게 이 비유를 분석하는 이들은 울타리를 율법의 상징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포도밭 주인은 소작인에게 이 포도밭을 맡기고 떠납니다. 여기서 포도밭을 맡은 소작인들은 백성의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이 떠난 이유에 대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통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백성과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포도 수확 철이 되어 소출을 받기 위해 소작인들에게 자신의 종을 보냅니다. 여기에서 소출은 하느님에 대한 백성의 믿음이나 충실함을 의미합니다. 지도자들에게 맡겨진 사명은 하느님의 백성을 성장시키고 그들이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도록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소작인들은 첫 종을 매질하여 빈손으로 돌려보내고, 다른 종은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모욕합니다. 주인은 또 다른 종을 보내지만, 그들은 종을 죽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주인은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다른 종들을 보냅니다. 주인이 보낸 종들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께서 파견했던 예언자들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예언자들을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보냈지만, 그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언자들은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습니다.

 

주인은 이제 자신에게 남은 외아들을 소작인들에게 보내고자 합니다. 여기서 이 비유는 포도밭 주인의, 곧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인내와 그의 백성과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는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나타냅니다. 그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을 무시하고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던 백성의 지도자들, 하지만 하느님은 자신의 백성을 위해 이제 외아들을 그들에게 보냅니다.

 

그 결과는 예상과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소작인들, 곧 백성의 지도자들은 이 아들마저 죽여버립니다. “자, 저자를 죽여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소작인들의 말은 그들이 주인을 대하는 잘 나타냅니다. 주인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그들의 욕심은 결국 외아들마저 죽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냈지만,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이 비유의 등장인물과 사건은 구약성경을 요약해 줍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외아들을 보낸 것은 예수님의 사건을 말합니다. 이 비유는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요약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비유가 바로 알레고리입니다. 하지만 모든 비유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비유의 제목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비유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이 소작인, 곧 백성들의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는 사명에 충실하지 못했던, 오히려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했던 그릇된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를 통해 이제 예루살렘에서 수난과 죽음의 길을 가게 되는 예수님의 운명을 미리 알려줍니다. 백성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은 이렇게 비유의 내용처럼 지속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월 1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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