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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히브리어 산책: 여섯째 바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01 조회수7,965 추천수1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여섯째 바브


낱말 · 문장 잇는 만능 접속사… 형태 바꿔 음가도 다양

 

 

히브리어의 여섯 번째 글자 바브(vav)는 이어주는 말이다.

 

<그림1> 바브. 바브는 수평과 수직의 형태가 나오는데, 수직의 형태에서 Y와 V가 파생되었다.

 

 

연결 도구

 

바브의 발전과정은 무척 복잡해서 이 작은 지면에 실을 수 없다. 필자는 독자의 이해를 위해서 바브를 크게 둘로 나눠보겠다. 하나는 가로로 누워있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수직으로 서있는 것이다. 이를 ‘수평의 바브’와 ‘수직의 바브’라고 하자. 바브의 옛글자는 다양하게 해석된다.

 

<그림1>에서 수평의 바브는 망치나 배의 노로 이해한다. 수직의 형태는 배의 닻혀나 배를 매는 지주로 본다. 이런 해석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바브는 본디 이어주는 도구라는 점이다. 배의 노나 망치나 닻혀는 물건이나 사람을 연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수직의 바브 형태에서 현대 알파벳의 Y와 V가 나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양한 변형

 

<그림2> 바브의 발전. 원셈어에서 수직의 바브의 머리가 점차 작아지다가 아람어(파란색)와 현대히브리어(붉은색) 문자에는 흔적만 남았다. 한편 우가릿어(초록색) 문자에서 수평의 바브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수직의 바브는 머리가 크고 둥근 형태도 보이지만, 대체로 머리가 점차 작아져서 아람어 문자와 현대 히브리어 문자에서 머리는 아예 작은 흔적만 남게 되었다<그림2>. 현대 히브리어 문자는 바브의 가장 날렵하고 간단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수평의 바브는 우가릿 쐐기문자에서 흔적을 볼 수 있다.

 

앞서 보았듯, 그리스 문자의 윕실론(Y)은 수직의 바브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머리가 작아지기 전에 그리스에 수입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은 수직의 바브의 머리만을 따서 발전시켰는데, 이 글자는 라틴어의 V로 발전한다. 사실 바브의 형태상의 발전은 매우 복잡하여, 바브는 V와 Y뿐 아니라 U와 F의 조상이기도 하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일일이 서술할 수 없어 죄송한 마음이다.

 

 

이어주는 브

 

<그림3> 브의 다양한 형태.브는 의미도 다양하지만 뒤따라오는 음가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변한다. 장음 ‘와’(wa)는 경우에 따라 단음 ‘오’(wo)로 발음해야 한다.

 

 

히브리어 가운데 바브로 시작하는 낱말은 거의 없다. 바브로 시작하는 거의 유일한 낱말은 그저 바브 하나로 된 ‘브’(ve)이다<그림3>. 이 낱말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다. 무려 5만 번 이상 등장한다. 이 말의 역할은 매우 단순하다. 두 낱말을 이어주는 것뿐이다.

 

브는 어떤 낱말이나 문장도 이어준다. 두 낱말이 어떤 관계이듯, 브는 가리지 않고 이어준다. 브의 대표적인 뜻은 ‘그리고’(and)이다. 그러나 상황과 문맥에 따라 브는 ‘그러나’, ‘그런데’, ‘더구나’, ‘즉’, ‘또한’, ‘…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여’ 등으로 옮긴다. 게다가 브는 종속문을 이끄는 접속사의 역할도 한다. 한마디로 두 낱말이나 문장을 잇는 접속사의 거의 모든 역할을 혼자 도맡는 말이다.

 

아무 말이나 가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이어주는 브는 형태도 무척 다양하다. 주로 뒤에 오는 말의 음가에 따라 브는 ‘우’, ‘와’, ‘웨’, ‘오’, ‘위’ 등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고대의 바브는 반자음의 음가를 지녔기 때문에 후대의 그리스어나 라틴어에서 반자음과 반모음의 조상이 되었다. 히브리어의 접속사 ‘브’는 뒤에 오는 낱말에 따라 스스로 형태를 바꾸어 모음으로 발음될 때도 있고 자음으로 소리날 때도 있다. 스스로 형태를 바꾸어 어떤 관계의 말이라도 모두 이어줄 뿐아니라 자음과 모음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음가를 내는 브는 실로 대단한 포용력과 적응력의 낱말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어주신 하느님

 

전례력으로야 이미 새해는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양력설을 맞는다.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어수선하고 정신없었던 한 해는 지났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또 하나의 해를 이어주셨다. 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나 똑같이 새해를 받은 것이다. 새롭게 시작되는 해에 우리 인간은 어떤 역사적 실천을 하게 될까? 구원사의 흐름 안에서 하느님께 순종하는 ‘그리고’나 ‘그러므로’의 한 해가 될까? 아니면 하느님을 거슬러 ‘그러나’의 한 해를 맞게 될까? 부디 모든 인간이 하나 되어 하느님께 옳은 응답을 드리는 한 해가 되길 빌어본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월 1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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