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바룩서는? 바룩서는? 흔히 바룩 1-5장과 바룩 6장(=예레미야의 편지)을 합쳐서 바룩서라 일컫습니다. 그러나 이 바룩 6장은 바룩서(1-5장)와는 어떤 관계나 유사점이 거의 없는 데도 바룩서 끝에 덧붙여져 전해오고 있습니다. 바룩은 누구입니까? 본디 ‘복 받은 이’라는 뜻을 가진 바룩이란 인물은 예언자 예레미야의 아주 가까운 벗이자 비서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 내용을 소리 내어 불러주면 바룩이 받아 적었습니다. 그러나 바룩서의 저자는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바룩과 동일한 인물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바룩서 서문의 내용은? 서문 안에는 쓴 이와 쓴 곳, 쓴 시기까지 나옵니다. “이 책에 기록된 말씀은 바룩이 바빌론에서 쓴 것이다…. 바룩은 칼대아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불태운 지 오 년째 되던 해, 그달 초이렛날에 이 책을 썼다.”(1,1-2) 아울러 첫 독자들의 반응까지도 소상히 알려줍니다. “그는 이 책에 나오는 말씀을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아들 여콘야와, 그 말씀을 들으러 온 모든 백성이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낭독해주었다. 세도가들과 왕족들과 원로들과 높고 낮은 온 백성, 곧 숫 강가 바빌론 모든 주민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 앞에서 울고 단식하며 기도하였다.”(1,3-4) 바룩이 자신의 책 바룩서를 다 집필하고 나서 유다 백성과 지도자들에게 낭독해주니 온 백성이 귀 기울여 듣고서 크게 감명을 받아 단식하고 기도드리는 모습이 눈에 띱니다. 나아가 그곳 유다 백성은 모금까지 하여 그것을 예루살렘에 보낼 뿐 아니라, 예전에 바빌론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서 가져간 온갖 성전 기물들을 모아서 유다 땅으로 돌려보냈다고 전합니다(1,6-9 참조). 바룩서 본문의 내용은? 먼저 팔레스티나에 남아있는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고 전합니다. 그들은 예언자들의 경고를 무시하였으므로 결국은 주님 말씀을 거역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하느님의 벌을 받아 민족이 흩어지게 되었음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1,15-2,5 참조). 한편 이역만리까지 끌려온 이들은? 그들 역시 자신들의 죄를 못 깨달아 회개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합니다(2,6-10 참조). 하느님께 불순종함으로써 재앙을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도 회개할 줄 모른다고 저자는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 올립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저마다 제 악한 마음의 생각에서 돌아서지 않아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재앙을 준비해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에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2,8-9)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이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아 결국 그 멀리까지 유배 와서 고생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리에게 내리신 명령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2,10) 이어지는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의 기도? 멀리 이방인들의 땅 바빌론까지 끌려와서 곳곳에 흩어져 사는 아픔을 겪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 저지른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들은 기도 올립니다. “당신의 분노를 저희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당신께서 저희를 민족들 사이로 흩으시어 저희가 적은 수만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어주소서. 당신을 위하여 저희를 구원하시고, 저희를 유배시킨 자들 앞에서 저희에게 은총을 내려주소서.”(2,13-14) 끌려온 이들의 기도는 길게 이어집니다. “보십시오. 오늘날 저희는 당신께서 저희를 흩어 버리신 곳에서 유배살이를 하며, 수치와 저주와 벌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희 조상들이 주 저희 하느님을 떠나 저지른 온갖 불의한 행실 때문입니다.”(3,8) 지혜 찬양 시(3,9-4,4)? 머리 부분에서는 유다인들이 멀리 유배 온 원인을 묻습니다. “이스라엘아! 어찌하여, 네가…… 남의 나라에서 늙어 가느냐?”(3,10) 이는 그들이 지혜의 뿌리를 외면한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네가 지혜의 샘을 저버린 탓이다.”(3,12) 이제 유다인들 곧 이스라엘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예지가 어디 있고 힘이 어디에 있으며 지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배워라. 그러면 장수와 생명이 어디에 있고 눈을 밝혀주는 빛과 평화가 어디에 있는지를 함께 깨달으리라.”(3,14) 누가 지혜를 찾았는가? 그 누구도 지혜를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누가 하늘에 올라가 슬기를 잡았으며 누가 구름에서 슬기를 끌어내렸는가…… 슬기의 길을 아는 이도 없고 그 행로를 깊이 생각하는 이도 없다.”(3,30-31) 오로지 하느님만이 참 지혜를 아시고 그러한 슬기를 이스라엘에게 주신다고 선언합니다. “모든 것을 보시는 그분만이 슬기를 아시고 당신의 지식으로 그것을 찾아내신다.”(3,32ㄱ) 바룩이 강조하는 바는? 이스라엘이 다시금 지혜를 붙들도록 권고합니다. “야곱아, 돌아서서 슬기를 붙잡고 그 슬기의 불빛을 향하여 나아가라. 슬기를 붙드는 이는 살고 그것을 버리는 자는 죽는다.”(4,2) 여기서 지혜는 하느님의 뜻 곧 율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장면(4,5-5,9)은? 예루살렘을 위로하는 희망의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길이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일곱 단계로 꾸며져 있으며 하나같이 예루살렘을 격려하는 말로 시작됩니다. ㄱ.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내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4,5). ㄴ. 아이들아,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부르짖어라(4,21). ㄷ. 아이들아,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부르짖어라(4,27). ㄹ. 용기를 내어라, 예루살렘아!(4,30) ㅁ. 예루살렘아, 동쪽으로 눈을 돌려 하느님에게서 너에게 오는 기쁨을 바라보아라(4,36). ㅂ. 예루살렘아, 슬픔과 재앙의 옷을 벗어버리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광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입어라(5,1). ㅅ. 예루살렘아, 일어나 높은 곳에 서서 동쪽으로 눈을 돌려보아라(5,5). 바룩서에서 중요한 바는? 교부들이 제시하는 다음의 ‘그리스도론적 내용’입니다. “이분께서 우리의 하느님이시니 어느 누구도 이분께 견줄 수 없다. 그분께서 슬기의 길을 모두 찾아내시어 당신 종 야곱과 당신께 사랑받는 이스라엘에게 주셨다. 그리고 나서야 땅 위에 슬기가 나타나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일찍이 교부들은 여기서 말하는 슬기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다고 보았습니다. 예레미야의 편지는(바룩 6,1-72)? 바룩서 6장의 표제가 ‘예레미야의 편지’라고 되어있지만 흔히 그 후에 쓰인 작품으로 봅니다. 아울러 이 예레미야의 편지가 예레 10,11의 해설이라고도 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하늘과 땅을 만들지 않은 저 신들은 땅에서 그리고 하늘 아래에서 사라질 것이다.” 예레미야 예언서 1364개 구절이 본디 히브리말로 쓰인 데 반해, 이 예레미야 10장11절만 아람어로 쓰였습니다. 덧붙인다면 구약이 거의 다 히브리말로 집필되었지만 극히 일부분만 아람어로 되었습니다. 예, 다니엘 2,4ㄴ-7,28; 에즈4,8-6,18; 7,12-26; 창세 31,47<일부>.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용현5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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