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8) 예수님의 탄생(2,1-7) : 초라한 탄생
아기 예수의 구유 탄생 뒤에는 요셉의 땀이 있었다 - 이스라엘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기념 성당 전경과 앞 광장.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예수 탄생 기념 성당이다. 루카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한 시대적 배경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서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됐을 때였고 또한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였다고 전합니다.(2,1-2) 조금 후에 살펴보겠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 기록은 부정확합니다. 성경 학자들은 이와 관련하여 루카의 연대 기술이 잘못이라는 점보다는 루카가 이런 배경 설정을 통해서 제시하려고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쨌거나 모든 사람이 칙령에 따라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고, 요셉도 임신 중인 약혼녀 마리아와 함께 고향 나자렛을 떠나 본향인 유다 지방 베들레헴으로 올라갑니다.(2,3.5) 베들레헴은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남쪽으로 100㎞ 넘게 떨어져 있습니다. 요셉이 그 먼 길을 임신 중인 마리아와 함께 간 것은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요셉의 본적지(本籍地) 혹은 원적지(原籍地)가 베들레헴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은 다윗 왕의 고향이었는데 요셉은 “다윗 집안의 자손”(2,4)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베들레헴에 머무는 동안에 해산 날이 된 마리아가 “첫아들”을 낳았는데, 여관이 만원이어서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2,6-7) 부정확한 역사와 루카의 의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호적 등록에 관한 칙령을 내렸고 또 그 시기는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였다고 한 루카의 설명은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기원전 29년(또는 27년)부터 기원후 4년까지 로마 제국을 다스린 제국의 초대 황제였습니다. 문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생전에 호적 등록에 관한 칙령을 내린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에 임명된 것은 기원후 6년쯤입니다. 그러니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에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이었다는 설명 역시 틀린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퀴리니우스는 총독이 된 직후인 기원후 6~7년쯤 이스라엘 지역에 호적 등록을 시행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루카는 왜 맞지 않는 두 시기를 예수님 탄생과 관련한 배경으로 설정해 놓았을까요? 그 이유를 헤아리게 해주는 단어가 있습니다. ‘베들레헴’입니다. ‘빵집’이라는 뜻의 베들레헴은 다윗 왕의 고향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10㎞가 채 되지 않는 곳이지요. 그리고 요셉은 다윗 가문의 후손이었습니다. 루카복음은 예수님 탄생 예고에 관한 기사에서 마리아가 잉태하여 낳게 될 그 아기가 다윗 왕좌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라고 예언합니다.(1,31-33 참조) 나자렛에서 살던 요셉과 마리아가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요셉의 본향인 베들레헴으로 갈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임신한 몸이었으니 더욱 그러했겠지요. 그렇다면 루카는 만삭의 몸인 마리아를 데리고 요셉이 베들레헴까지 가야 할 이유를 퀴리니우스 총독이 시행하라고 명령한 호적 등록으로 설명하고자 한 셈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 왕실을 이어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릴 통치자가 베들레헴에서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미카 5,1 참조) 이는 또한 구약 미카 예언자의 예언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기 시대적 배경, 베들레헴이라는 장소의 의미를 제외하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자체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는 듯합니다. 요셉은 호적 등록을 하러 만삭이 된 아내와 함께 원적지를 찾아갑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고 만삭이 된 아내를 위해 방을 구하려 해도 구할 곳이 없었습니다. 해산할 곳을 찾아 헤매던 끝에 겨우 구한 곳이 외양간이었습니다. 그래서 해산한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뉘일 곳이 없어 구유를 요람으로 삼은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한 가지 묵상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요셉의 노력입니다. “의로운 사람”(마태 1,19) 요셉은 아마 마리아가 해산하기 직전까지 방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2,7) 만원이어서 방을 구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돈이 없거나 부족해서 못 구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요셉은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 결국 외양간에서 첫아들을 낳았습니다. 현재의 처지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에는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첫아들”(2,7)이라는 표현과 관련해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부인하는 개신교 측에서는 “첫아들”이라는 표현을 자기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첫아들”이란 표현은 예수님에게 동생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맏물은 하느님께 바치라는 성경 말씀(탈출 13,12; 34,19-20)처럼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가톨릭 성경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물의 맏이라고 고백합니다.(콜로 1,15 참조) - 예수 탄생 기념 성당 안의 예수 탄생 기념 자리.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예수님의 탄생 연도 예수님 탄생 이야기와 관련해 더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연도는 정확히 언제일까요. 마태오복음을 따르면, 예수님께서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고 합니다.(2,1) 반면에 루카복음을 따르면,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 때에 실시한 호적 등록 때에 태어나셨습니다. 이때는 이미 헤로데 대왕이라고도 하는 헤로데 임금이 사망한 뒤였습니다. 그런데 루카는 또한 요한 세례자가 잉태된 것이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 곧 헤로데 대왕이 통치하던 때라고 합니다. 이 헤로데 임금은 역사적으로 기원전 4년에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 시기가 적어도 기원전 4년 이전이라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기원전 6년에서 4년 사이에 태어나셨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탄생 연도를 기준으로 삼는 표현들인 B.C.(Before Christ, 그리스도 이전, 기원전) 혹은 A.D.(Anno Domini, 주님의 해, 기원후)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요? 6세기에 제56대 교황 요한 1세(재위 533~535) 지시에 따라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라는 수도자가 기존의 여러 달력을 참고해 전례용으로 사용할 달력을 만들 때 주님 강생을 기원으로 삼아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계산 착오로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 이전(B.C.) 6년 또는 그즈음에 탄생하셨다는 이상한 결과가 나오게 됐다고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4월 9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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