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47)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 7,59)
죽음으로 예수 따른 ‘거룩한 순교’ - 안니발레 카라치 작, ‘성 스테파노의 순교’, 1603-04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사도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갔던 초기 교회 공동체는 다양한 모습과 함께 역동적으로 소개됩니다. 예수님의 활동은 사도들을 통해 지속되고 공동체는 자신들의 체험을 삶으로 이어갑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항상 기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도들의 활동과 신앙생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바로 ‘박해’입니다.
박해는 비단 초기 공동체의 활동 시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공통적으로 배경이 된 것은 박해입니다. 신약성경은 모두 이러한 박해의 상황 속에서 기록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잡혀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유다인들이, 종교 지도자들이 십자가형에 처한 예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이지만 사도들과 신앙인들에게 주는 십자가 사건의 의미와 종교 지도자들에게 주는 의미는 달랐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사도 5,30-32)
사도들의 복음 선포는 종교 지도자들을 격분하게 만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한 가장 큰 이유는 하느님을 모독한 것인데 사도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하느님의 업적으로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교와 유다교는 서로 구분됩니다.
초기 공동체가 지닌 외적인 어려움은 이렇듯 박해였습니다. 하지만 내적인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출신의 신앙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사도 6,1)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또 양적으로 커지는 공동체를 위해 새로운 제도들이 생겨납니다.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도들과 공동체는 ‘부제’들을 뽑습니다. 이렇게 공동체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일곱 명의 부제를 뽑아 안수한 다음 그들에게 직무를 맡깁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복음 선포에 전념합니다. 공동체가 커가면서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지만, 이것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공동체는 더욱 성장했다고 사도행전은 기록합니다.
부제들 중에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스테파노입니다.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예수님의 죄목과 비슷하게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최고 의회에서 신문을 받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처럼 기록되어 있는 스테파노의 설교는 사도행전에서 가장 긴 설교로, 구약성경의 내용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요약하여 전합니다. 마치 구약의 내용을 통해 암시적으로 유다인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이 설교는 크게 두 가지의 주제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모세를 중심으로 한 해방의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어떻게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약속된 땅으로 이끌어가셨는지를 설명합니다. 다른 주제는 성전과 관련된 것입니다. 광야의 증언의 천막에서 시작된 하느님의 거처는 다윗과 솔로몬에 이르러 성전으로 세워집니다. 유다인들은 이렇게 하느님의 집을 지었지만 정작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이 설교로 스테파노는 순교합니다. 순교 당할 때 스테파노의 모습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모습과 많이 닮았습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루카복음이 전하는 십자가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스테파노의 순교 때에도 표현됩니다. 루카는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의 죽음이 예수님을 따른 것임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5월 7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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